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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Apr 07. 2023

부서 배치 열흘 만에 질병 휴직계를 내다

제11화

[이 글은 현재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연대기로 정리하는 시리즈 글입니다. 브런치와 네이버 카페 강한 영어학원 만들기에 업로드합니다.]






활화산같이 오열을 토해내며 꺽꺽대던 숨의 그래프 진폭이 잦아들 무렵, 원장님은 새 휴지들을 건네주시면서 상담을 시작하셨다. 


난 지난 일 년 동안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포함하여 신변의 변화들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회사에 절대 가고 싶지 않다고, 당장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원장님은 차분하고 따뜻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환자분은
너무 머리가 뜨거운 상태예요.

우리 머리가 뜨거울 때는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결정을
나중에 후회할 가능성이 커요.

제가 그런 환자들도
많이 보았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혹시 당장 퇴직을 하는 것보다
휴직을 하는 건 어때요? 



처음엔 떼를 쓰며 싫다고 했다. 


회사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도 너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냥 회사와 관련된 모든 끈을 끊어내고 싶었다. 


리셋하고 싶었다. 

나를 껐다가 켜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껐다가 켜는 그 사이 텀이 아주 길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지만 원장님은 여러 번 나를 설득했고, 일단 휴직을 한 뒤에도 계속 마음이 불편하고 퇴직에 대한 의지가 꺼지지 않으면 그때 퇴직을 하자고 하셨다. 


나는 마지못해 원장님 말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원장님께서는 혹시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로 회사에 휴직계를 내게 되면, 불이익이 있지는 않은지 물으셨다.


정신과 질환으로 진단명이 나가면 암암리에 불이익을 주는 회사들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까지도 사려 깊게 생각해 주셨다. 


아무래도 소문은 날 것 같았지만 어차피 난 복직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선택지는 두 개였다. 

휴직 후 퇴직, 또는 지금 당장 퇴직. 


어차피 끝이 정해진 결정이라면 마치 용광로처럼 1500℃로 끓고 있는 내 뇌의 판단을 따르기보단 원장님의 판단이 나을 거라 생각해서 휴직을 하는 거였다.


뒷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생각할 수가 없었다.


원장님은 소견서와 진단서를 작성해 주셨고 난 그렇게 원하던 부서 배치 열흘 만에 질병 휴직계를 낸 직원이 되었다.



상기자는 예측할 수 없이 발생하는 불안, 초조함, 호흡곤란, 등으로 상기 병명 의증하에 본원에서 외래치료받았으며, 정상적인 근무가 불가능할 것으로 사료되며 향후 부정기간 신경정신과적 전문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됨.

병명 공황장애 [우발적 발작성 불안] / 질병분류번호 F410.



제1장 마침. 



<다음 화에 계속>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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