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있는 그대로 본 것인가? 열, 까치집

by 순야 착지

마른 가지로 지어 올린 생명의 숲


명상 노트

오늘은 한식이자 산에 나무를 심는 식목일입니다. 사람들은 푸른 묘목을 흙에 심으며 희망을 기약합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니, 우리보다 먼저 위대한 '식목(植木)'을 실천한 존재가 있습니다. 겨우내 버려진 앙상한 마른 가지들을 수백, 수천 번 입에 물고 날아올라 기어이 허공에 둥지를 튼 까치의 고군분투입니다. 도반들이 매일 지루하고 고단한 일상의 수행을 이어가며 '적공(積功, 공덕을 쌓음)'의 위대함을 실천하듯, 까치는 마른 가지를 축적해 생명의 집을 짓습니다. 위대한 깨달음이나 찬란한 비상(飛翔)은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기적이 아니라, 묵묵히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는 저 치열한 반복 속에 있음을 배웁니다.


일상의 시선

만개한 벚꽃을 보러 상춘객들이 몰려드는 4월의 울산대공원입니다. 흐드러진 연분홍 벚꽃잎 사이, 높게 솟은 벚나무 가지 끝에 투박한 까치집 하나가 얹혀 있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땅바닥의 마른 가지들이 어미 까치의 부리에 물려 올라가 태풍에도 견딜 요새처럼 정교한 집이 되었습니다. 그 나무 아래를 지날 때, 귓가에 작지만 선명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짹! 짹!"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갓 부화한 새끼들의 합창입니다. 화려하게 피어난 벚꽃보다, 쓸모없어 버려진 마른 가지들이 어미 까치의 부리를 만나 생명의 요람으로 피어나 '짹짹' 맥동하는 저 실상(實相)의 소리가 오늘따라 더 눈부시게 다가옵니다.


순야의 단상 (순야시)


부리로 나른

나뭇가지 어느새

까치집, 짹짹!!


문구 해석


부리로 나른: 남들 눈에 띄지 않게 매일 조금씩 땀 흘리며 묵묵히 이어가는 일상의 노력과 수행의 과정입니다.

나뭇가지 어느새: 보잘것없어 보이던 그 작은 행위와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어느덧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삶의 토대(집)를 이룬 경이로움입니다.

까치집, 짹짹!!: 생명력이 다한 마른 가지 속에서 마침내 알을 깨고 나와 온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환희로운 생명과 깨달음의 소리입니다. 쉼표(,)는 정적인 노력에서 동적인 결과로의 극적 전환을, 느낌표(!!)는 그 소리의 생동감을 증폭시킵니다.

교리 한 마디: 마른 가지에 꽃을 피우는 적공(積功)

마른 가지 하나는 땔감일 뿐입니다(空). 하지만 까치의 인연과 노력을 만나 새끼를 품는 둥지로 거듭나고(假), 마침내 그 안에서 생명이 숨을 쉽니다(中). 쓸모없는 것이 가장 귀한 생명의 요람이 되는 이치가 바로 우주의 연기(緣起)입니다. 천태학에서는 이를 수행의 관점에서 적공(積功)이라 부릅니다. 공덕은 한 번에 쌓이지 않습니다. 한 입, 한 입 부리로 물어 나른 마른 가지들이 모여 생명을 지켜내는 집이 되듯, 우리의 단조로운 일상과 꾸준한 수행이 모일 때 비로소 내면의 부처가 '짹짹' 하고 깨어납니다. 진정한 식목일은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을 넘어, 내 삶의 흩어진 가지들을 모아 생명의 집을 짓는 날이어야 함을 배웁니다.


[연재 시간 알림]

일요일 아침의 짧은 만남 한 주를 차분히 정리하고 새로운 내일을 그려보는 일요일 오전 10시, 늦은 아침의 여유 속에 [순야의 단상]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쉼표를 찍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평온을 비는 마음]

글을 마치며, 한 주의 시작과 끝이 모두 평온하시길 기원합니다. 몸도 마음도 정갈하고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라며, 다음 주 일요일 아침에 맑은 향기를 담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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