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꽃이 뽑히는 것을 보며 울었다」

8년을 함께한 보라가, 어느 날 뿌리째 뽑혔다

by 쉼표

엄마의 치맛자락 같고,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스러운 웃음 같던 그 꽃들.

베트남 땀끼, 회사 건물 담벼락.

그 꽃은 8년째 그 자리에 피어났다.

향기 없이 보랏빛만, 달빛처럼 어우러져.


처음 본 건 친정엄마 기일 날이었다.

늘 곁에 있었는데, 그날따라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보라야, 안녕."


그날부터 나는 매일 아침, 숙소에서 회사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그 꽃과 인사를 나눴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아."

"오늘 참 많이 힘들었어."

"내일 또 보자."


엄마와 대화하듯, 친구와 수다 떨듯.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 자리에서 보라는 늘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너의 곁에 있어."


베트남 생활 6년째.

외롭고 쓸쓸할 때면 나는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그곳은 내게 고향 같고, 엄마 같고, 친구 같은 위로의 공간이었다.

그리움이 묻어 있는.


화려하지도,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기웃기웃 피어나 사람 마음 붙들던 그 보라꽃.


나는 그 꽃을 사랑했다.

아무 조건도 없이, 이유도 없이.


하지만 어느 날, 그 보라는 뿌리째 뽑혀 사라졌다.


"건물에 해롭다"는 말 한마디에.


내 마음도, 함께 뽑힌 듯했다.


"쉼표의 추억을 송두리째 뽑아버리셨네요."


그렇게 한마디 남겼지만,

그날 밤 나는 울었다.

눈물 한 바가지, 소리 없이 쏟아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곳은 내 공간이 아니었으니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 문득 생각했다.


그 꽃은 정말 사라진 걸까?


아니었다.

그 보라는 내 마음 한가운데,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아무도 몰래, 내가 "보라"라고 불렀던 그 기억들이,

지금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으니까.


8년간 매일 아침 나눴던 인사,

"내일 또 보자"던 그 약속,

엄마를 닮았던 그 온기.


그 모든 것이 이제는 누구도 뽑아낼 수 없는 곳에 자리 잡았다.


나는 감성으로 세상을 보고,

누군가는 현실로 세상을 정리한다.


나는 그 공간에서 엄마를 만났고,

누군가는 그 공간을 관리해야 했다.


보는 시야가 다를 뿐,

그 마음 안에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그 사람은 책임으로 정리한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남은 건,

내 안에 여전히 피어 있는 그 보라.


이제 누구도 뽑아낼 수 없는,

내 글 속에 뿌리내린 위로.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쓰기로 했다.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던 기억,

누군가에게 말없이 위로가 되었던 순간,

그 모든 것을 글로 꺼내 보기로 했다.


이제부터 나는 글을 통해 다시 숨 쉰다.

글을 통해, 다시 걸어간다.


쉼표.

나는 이제, 글을 쓴다.

눈물 한 바가지 흘려본 사람만이 건질 수 있는,

그 마음을 가지고.


오늘, 이 문장을 통해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선언한다.

"나는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쉼표,
Comma.

Pause. Breathe. Write.

남쪽 끝 바다마을의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단어로 하루를 건너고,
바람으로 마음을 적십니다.

《쉼표》를 구독하시면,
다음 이야기를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쉼표》 구독하기
https://brunch.co.kr/@39d166365bd047c


작가 쉼표.
Pause. Breathe. Write again.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모래 위에 피어난 물결의 입맞춤》 전편

1화. 프롤로그 – 파도 너머의 속삭임

2화. 다시 부르는 노래 – 기억의 파편

3화. 파도는 늘 제자리로 들어오니까

4화. 그 바다 끝에서 마주한 빛

→ 5화. 장맛비가 멈춘 뒤, 그가 앉아 있던 자리

→ 6화. 너는 그날, 나를 잊지 않았구나

→ 7화. 낯선 거리, 익숙한 사람

→ 8화. 도시의 틈, 그곳에 스며든 마음

→ 9화. 손끝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 10화.놓아주는 것의 의미


#에세이 #일상의 기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