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을 함께한 보라가, 어느 날 뿌리째 뽑혔다
엄마의 치맛자락 같고,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스러운 웃음 같던 그 꽃들.
베트남 땀끼, 회사 건물 담벼락.
그 꽃은 8년째 그 자리에 피어났다.
향기 없이 보랏빛만, 달빛처럼 어우러져.
처음 본 건 친정엄마 기일 날이었다.
늘 곁에 있었는데, 그날따라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보라야, 안녕."
그날부터 나는 매일 아침, 숙소에서 회사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그 꽃과 인사를 나눴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아."
"오늘 참 많이 힘들었어."
"내일 또 보자."
엄마와 대화하듯, 친구와 수다 떨듯.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 자리에서 보라는 늘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너의 곁에 있어."
베트남 생활 6년째.
외롭고 쓸쓸할 때면 나는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그곳은 내게 고향 같고, 엄마 같고, 친구 같은 위로의 공간이었다.
그리움이 묻어 있는.
화려하지도,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기웃기웃 피어나 사람 마음 붙들던 그 보라꽃.
나는 그 꽃을 사랑했다.
아무 조건도 없이, 이유도 없이.
하지만 어느 날, 그 보라는 뿌리째 뽑혀 사라졌다.
"건물에 해롭다"는 말 한마디에.
내 마음도, 함께 뽑힌 듯했다.
"쉼표의 추억을 송두리째 뽑아버리셨네요."
그렇게 한마디 남겼지만,
그날 밤 나는 울었다.
눈물 한 바가지, 소리 없이 쏟아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곳은 내 공간이 아니었으니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 문득 생각했다.
그 꽃은 정말 사라진 걸까?
아니었다.
그 보라는 내 마음 한가운데,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아무도 몰래, 내가 "보라"라고 불렀던 그 기억들이,
지금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으니까.
8년간 매일 아침 나눴던 인사,
"내일 또 보자"던 그 약속,
엄마를 닮았던 그 온기.
그 모든 것이 이제는 누구도 뽑아낼 수 없는 곳에 자리 잡았다.
나는 감성으로 세상을 보고,
누군가는 현실로 세상을 정리한다.
나는 그 공간에서 엄마를 만났고,
누군가는 그 공간을 관리해야 했다.
보는 시야가 다를 뿐,
그 마음 안에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그 사람은 책임으로 정리한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남은 건,
내 안에 여전히 피어 있는 그 보라.
이제 누구도 뽑아낼 수 없는,
내 글 속에 뿌리내린 위로.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쓰기로 했다.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던 기억,
누군가에게 말없이 위로가 되었던 순간,
그 모든 것을 글로 꺼내 보기로 했다.
이제부터 나는 글을 통해 다시 숨 쉰다.
글을 통해, 다시 걸어간다.
쉼표.
나는 이제, 글을 쓴다.
눈물 한 바가지 흘려본 사람만이 건질 수 있는,
그 마음을 가지고.
오늘, 이 문장을 통해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선언한다.
"나는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쉼표,
Comma.
Pause. Breathe. Write.
남쪽 끝 바다마을의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단어로 하루를 건너고,
바람으로 마음을 적십니다.
—
《쉼표》를 구독하시면,
다음 이야기를 가장 먼저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 《쉼표》 구독하기
� https://brunch.co.kr/@39d166365bd047c
작가 쉼표.
Pause. Breathe. Write again.
《모래 위에 피어난 물결의 입맞춤》 전편
#에세이 #일상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