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견 근무 시절 인생관을 바꾸게 해준 이스라엘 여학생 이야기
바보아저씨의 경제이야기
(본 글은 "바보아저씨 경제이야기" 저자가 2권을 집필하면서 브런치에 단독으로 기고하는 글입니다. 외부로의 무단전재 및 배포를 금지합니다.)
모처럼 저자가 에세이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아메리카노 한잔 하시면서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향수병과 이스라엘 여학생
- 향수병 걸렸던 경험과 인생관을 바꾸게 해준 이스라엘 여학생
필자는 이미 "바보아저씨의 경제이야기" 책 1권에서 한국에서 오랫동안 지방출장 근무 생활을 하고, 회사 사옥에서 먹고 자고, 해외파견을 어떻게 나가게 되었는지 그 계기와, 해외에 나가서 어떻게 고생을 했고 힘든점이 무엇 이었는지 상세하게 다루었습니다.
오늘은 책 1권의 내용에 이어서 필자의 해외파견 이야기를 좀 서사적으로 정리하고자 이렇게 필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글의 사실감을 돋우기 위해 본 글은 일기 형식의 에세이 독백체로 글을 이어나가겠습니다.
필자가 이슬람 국가로 해외파견을 나가 근무를 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해외파견 근무를 나가본 분들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정기휴가 날짜만 목빠지게 기다리면서 근무를 한다. 다른 사람들이 휴가를 다녀와 복귀하면 할수록 내 휴가 날짜가 다가오니 휴가 한 달 전만 되어도 벌써 한국으로 길게 본국 휴가를 나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인다. 한국에 계시는 분들은 해외파견 근무라고 하면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고 회의하며 해외에서 근사하고 멋있게 생활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적 정서가 없고,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도 마트에 없고, 이질적인 풍토와 환경 온도 습도 미세먼지, 비슷한 또래의 한국 사람들을 쉽게 보기도 힘드니 6개월~1년 사이에 누구나 향수병이 찾아온다.
고국에 대한 향수병이 빨리 찾아오시는 분들은 처음 나가서 3개월 안에도 찾아오기도 한다. 이역만리 타향까지 나가서 의지할 데라고는 서로 같이 일하고 잠도 같이 자는 회사 동료밖에 없는데 이런 동료직원 중 한명씩 한명씩 향수병에 걸리기 시작하면 사무실 분위기도 침체가 된다. 아직 향수병에 오지 않는 멀쩡한 직원들은 향수병에 걸려 우울해지고 때로는 난폭해 지고 업무 퍼포먼스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직원들의 상황을 잘 받아드리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근무 할 때는 그런 직원의 변화되는 모습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번 향수병이 왔다가 온 정신으로 돌아온 직원들은 그래서 나중에 향수병에 걸린 직원을 잘 이해해주고 힘이 들지만 도와주려고 노력을 한다.
나도 해외파견에 나가 10개월 차 정도에 향수병이 막 오기 시작을 하였다. 물론 번아웃 증후군 처럼 처음 향수병을 경험하는 사람은 그것이 향수병인지 잘 느끼지 못한다. 해외에 나가면 처음엔 퇴근하고 TV로 한국 예능이나 드라마 같은 걸 많이 본다. 그러다가 사람이 한국이 그리워지고 좀 우울해 지는 시기가 오면 평소에 한국에서 잘 듣지 않던 한국노래를 찾아 듣게 된다. 주로 대학생 시절 즐겨 들었던 가요나 발라드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예능, 드라마 위주로 프로그램을 보다가 나중에는 다큐3일, 인생극장, 다큐스폐셜 같은 프로그램으로 TV보는 성향이 바뀌게 되었다.
왜인고 하니 다큐멘터리에 서울 광장시장이 나오면 화면 속 시장안에 보이는 막걸리에 파전 생선전 떡볶이 순대 같은 음식들이 먹고 싶고 그리워서다. 현지에서는 먹고 싶어도 KOREAN MART에서 비싸게 주고 산 냉동 레토르트 분식을 먹을 수 있을 정도니 한국 포장마차에서 단돈 몇백원 주고 먹을 수 있었던 오뎅이나 오뎅국물, 퇴근하고 간단히 회사 동료들과 막걸리에 빈대떡 먹었던 그 맛이 계속 떠오르고 그리워지고 나중에는 간절해지기까지 한다.
TV속 광장시장의 모습을 보면서 그걸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다. 한번은 10개월 차에 막 향수병이 오고 우울해 지던 시기에 한국 방송에서 파독 광부 간호사 관련 스폐셜 프로그램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독일에 파견 가셨고 아직도 독일에 살고 계시는 파독 간호사분께서 인터뷰에 이런 말을 하셨다. "처음엔 돈 많이 벌어서 한국에 돈 많이 부쳐주는 재미로 살았는데, 1년 딱 넘어가니까 돈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서 일하는 중에도 펑펑 눈물이 나오고 집에서도 펑펑 울고 그랬다." 이 인터뷰를 TV로 보면서 나도 거짓말처럼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와락 쏟아지더라....
사실 파독 광부 간호사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때만 되면 TV에 나왔던 단골 편성 메뉴였다. 한국에서 봤을 때는 이런 감정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는데 해외에서 고생해보고 향수병이 오기 시작한 상태에서 방송을 보니 내 얘기 같아서, 지금 내 상황이랑 똑같은 것 같아서 눈물이 난 것이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에 파견 된 한화 직원이 나왔던 다큐에서도 직원들이 휴가 갈 날짜만 기다린다는 그 장면을 보고도 너무 공감이 되어 방송을 몇번을 틀어놓고 보기도 했었다.
해외파견 직원의 휴가 나가는 심정...(※ 해당 사진과 저자의 글 내용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외 나가면 휴가 나가길만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일을 한다.
그런데 향수병이 오기 전이었던 첫 휴가 때는 상황이 좀 달랐다. 그때 당시에는 해외에 나간 것이 마냥 좋고 신났고 파견비 수당도 많이 나오고 월급도 많이 모이던 시절이고 향수병 같은 마음에 병도 없었으니 본국휴가 기간에 한국에 가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을 하였다. 많은 젊은 직원들이 해외파견을 나가면 하는 방식으로 나는 해당국가가 삶의 거점이 되었으므로 주변국을 여행하고자 하였다. 어떤 직원은 싱가포르로, 어떤 직원은 히말라야 네팔로, 어떤 직원은 이스탄불이나 지중해 유럽으로 또 어떤 직원은 말레이시아나 중국 쿤밍 정도로 휴가를 다녀오기도 하였었다. 한국에서 보다 비행 시간이 5~6시간 줄어드니 그만큼 항공권 가격이 싸지고 시간도 절감되고 소비여력도 있으니 그렇게 휴가를 많이 다녀오곤 했다.
나도 그때 향수병 오기 전이라 한국보다 다른 나라, 못 가본 나라를 정해서 여행을 하고자 하였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끄라비, 피피섬 이었다. 당시 몇년 전만해도 한국에서는 끄라비 보다는 푸켓이 더 인기가 있었던 여행지 였다. 그 이후에 끄라비가 유명해 지더라. 방콕 스왓나품 공항에서 내려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한시간 걸려 끄라비 공항에 도착을 해서 끄라비에 며칠 묵은 후에 배를 타고 피피섬(Phi Phi Island)으로 이동해서 거기서 휴양을 즐겼다.
피피섬은 북쪽 해안과, 남쪽 해안이 반달 모양으로 맞물려 그 경관이 환상적인 곳이었다. 관광객은 대부분 유럽에서 온 듯한 20대 초반 젊은이 들이 주였다. 동양인은 거의 관광객 10명이면 1명도 보기 힘들 정도였던 당시였다. 지금은 어떨 지 모르겠다. 일일투어로 섬투어도 하고 스노클링도 좀 해봤고 밤에는 바닷가에서 불쇼도 하고 섬 전체가 하와이나 괌처럼 축제 휴양 분위기더라. 섬 주요 지역을 도보로 이동해 다닐 수 있는 곳이다 보니 밀집되어 있어 더 흥미로운 곳이었다.
피피섬에 이틀 정도만 묶고 다른 여행지로 이동할 생각을 하고 들어갔는데. 태어나서 그런 휴양지를 가본 것이 처음이라 못 가본 포인트가 있어 "어차피 평생 언제 다시 올 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여행 일정을 바꾸어 피피섬에서 1박을 더 하려 항공권 일정을 변경하려고 현지 여행사에 들어가서 일단 로컬 항공권을 하루 딜레이 시켜달라고 하였다.
항공권 날짜 변경을 기다리면서 여행사 안에 아주 오래된 구형 인터넷이 되는 PC가 있어서 그걸로 인터넷 서핑을 잠깐 하고 있는데 아주 젊어 보이는 20대 초반 백인 여성이 여행사 안으로 들어오더라. 색은 기억 안나지만 간편한 반팔티에 반청바지를 수수하게 입고 허름한 백팩을 매고 들어와서는 기웃기웃 거리더니 문앞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나한테 뭘 물어보는 것이었다.
여성: "저기,, 혹시 이 섬에 오늘 숙박을 할 수 있는 방이 있나요?"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물론 영어로 말이다.
그래서 내가 그때 인터넷 호텔 숙박 사이트 에서 숙박 결제를 많이 하던 상황이었고 그때도 인터넷으로 1박을 더할 방 시세를 알아보는 중이었으니
바보아저씨: "여기 방 많아요. 성수기 아니니까 80~100달러만 주면 넓고 좋은 방에서 잘 수 있어요"
라고 대답해 줬더니 이 여성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라...
여성: "헐.. 그렇게 비싼가요? 그건 저희 Budget을 초과하는데요..."
이렇게 말하더라. "저희 Budget 을 초과한다"라...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이 여성 남자친구가 크고 무겁게 생긴 긴 백팩을 들고 여행사 안으로 들어오더라. 아 혼자 온게 아니라 둘이 여행을 온거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바보아저씨: "그럼 여기 보시면 50달러 짜리 방도 많아요. 퀄리티가 좀 낮아서 글치" 이랬더니
여성: "....그...그돈도 저희 Budget을 초과하는데요.. 더 싼 방은 없나요?" 라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내가 궁금해서 얼마에 묵으려고 하냐고 물어보니 20~30달러 정도 30달러는 절대 못 넘긴다고 하더라.
이렇게 좋은 피피섬 휴양지 까지 와서 남자친구랑 같이 여행을 와서는 단돈 20~30달러 수준에 방을 구하려고 하는게 신기해서 아고다를 찾아보니 그런 방이 있긴 있더라 사실 여행지 어딜 가도 성수기만 아니면 30달러 아래로 방을 구할 수 있기는 하다. 편히 잠을 못 잘 것 같으니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대화하면서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이스라엘 사람 대학생이고 남자친구랑 같이 여행을 왔다고 하더라. Budget이 작은 이유는 돈이 없어서, 돈이 없어도 여행은 충분히 할 수 있고 휴양지에 와서 젊을 때 자연경관을 만끽하며 여행하고 싶어서 왔다고 하더라. 나중에 배를 타서 섬투어를 하는 여행객들을 보니 실제로 20대 초반 유럽 젊은 사람들이 값싼 목선을 타고 나타나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않고 바닷속에 풍덩 풍덩 다이빙해 뛰어들며 재밌게 놀더라. 바다수영이 어려운데 잔잔한 곳에서는 수영도 잘하고 정말 여러명이 몰려와서 재미있게 놀더라. 그들 또한 비싼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아주 싼 항공권과 아주 싼 숙박을 이용해 피피섬의 자연을 경험하려고 온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당시 회사에서 해외숙박비 파견비 월급이 다 나오는 상황에서 돈 쓸 곳이 없어 저축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가끔 나오는 휴가때는 돈을 좀 쓰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피피섬 정도 되는 휴양지에 놀러가서 숙박을 하려면 최소 80~100달러 정도는 주고 숙박을 해야 급에 맞지"라 생각해서 90달러 정도되는 숙박을 예약하고 피피섬에 들어 갔는데 현지 여행사에서 만난 이 이스라엘 학생 커플은 둘이서 하루 20~30달러 Budget으로 숙박을 하면서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허름한 곳에서 숙박을 하여도 낮에는 에너지 넘치게 다른 사람 처럼 바다에 뛰어들어 놀겠지... 라는 생각을 하였다. 휴양지면 호텔에 숙박해 화려한 호텔 리조트에 한가롭게 누워 모히또 한잔 하는 여행을 항상 꿈꿔왔던 나로써는 이 젊은 이스라엘 커플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실 20대 중반 정도까지의 젊을 때 나는 시골에서 컸어도 재래시장 들어가서 뭐 사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회사 상사들과 퇴근하고 즉석 빈대떡 집에 들어가서 돼지비계 기름냄새 옴팡 써가며 먹는, 맛있기는 했어도 막걸리에 전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향수병이 온 이후에는 방송에 광장시장, 재래시장, 어시장, 인간극장 같이 소소하게 한국적 정서와 배경이 뭍어나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게 되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재래시장 들어가는 것이 좋아졌고 시장에서 뭐 사먹는 걸 즐기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비교를 해보고 체험해 보니 그렇게 되더라.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해외현지 국가의 재래시장은 정말 냄새나고 위생 수준이 형편없다. 처음엔 그런 현지 시장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나중에 그런 시장 안에서 현지어로 가격 흥정하고 깎아서 야채사고 과일사고 적응이 되더라. 그리고 나니 한국에 돌아와 전통시장 재래시장 들어가 보니 이렇게 깨끗하고 싸고 좋을 수가 없더라.
지금도 다큐 방송에서 해외사는 사람들 나오는 거나 한국 시장의 모습이나 종로 갈매기 골목, 부산 고등어 경매나 충주 공판장에 잘 농사지은 사과경매 하는 거 등등 소소하게 방송 나오면 외국에 있을 때 향수병 걸려 고생한 기억이 나서 즐겨 보곤 한다. 그러고 보면 시청률이 높지 않아도 나같은 사람을 위해 저런 프로그램 꾸준히 제작해 주는 방송사에 참 고마운 생각이 든다.
- 바보아저씨의 경제이야기 2권을 열심히 집필 중인 바보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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