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2화
회사를 떠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밀려났을까?” 성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회사 내에서의 입지 문제였을까? 퇴사 전까지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다. 실적을 내려고 노력했고, 맡은 업무를 최선을 다해 해냈다. 하지만 회사는 단순히 ‘성과’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첫 번째, ‘주목받는 부서에 있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실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이 더 중요했다. 회사에서 핵심 프로젝트를 담당하거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부서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보호받았다. 나는 목소리를 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내 업무는 회사에서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마케팅은 돈을 벌어오는 부서가 아니라, 돈을 쓰는 부서였다. 특히 유통회사에서 온라인 마케팅은 영업이익을 깎아먹는 비용으로 취급됐다. 아무리 성과를 내도, 그것이 조직 내에서 중요한 요소로 인정받지 못했다. 굳이 나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고, 성과는 숫자로 증명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조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두 번째, ‘줄을 잘 서는 사람’이었다. 대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능력보다 ‘어느 팀에 속해 있느냐’였다. 특정 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보호받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밀려났다. 나도 처음엔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팀장의 위치가 곧 팀원들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팀장은 대표 라인이었고, 회사 내부의 역학 관계에서 그 라인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팀이 흔들릴 때, 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회사의 룰을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이었다.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다. 공적인 회의에서 말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 조용히 맞춰가는 사람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나는 그런 룰을 알고는 있었지만, 때때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조직은 내 개인적인 신념보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나는 성과를 냈지만,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밀려났다. 그리고 퇴사 후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조직 내에서의 입지를 고려하기보다, ‘내가 할 일을 잘하면 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그런 단순한 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회사에서 끝까지 버텨야 했을까? 아니면, 지금 떠난 것이 결국 나에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까? 이 질문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