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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Nov 04. 2017

[일본]베트남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본인 기자, 토모미

거기에는 항상 맛있게 생긴 찐빵이 있다.

산처럼 실리는 찐빵.

학교에 가는 길에서 언제나 보이는 풍경이다.

찐빵은 

무섭게 생겼지만 친절한 아저씨가 만들고, 찐빵처럼 생긴 아줌마가 판다.

4개에 2000원.

나에 있어서는 너무 많다.

그래서 언제나 2개 산다.

"아줌마, 2개 주세요!"

"네"

아줌마가 냄비 손잡이를 들면 김이 모락모락 나다.

아줌마처럼 따뜻하고, 아저씨처럼 부드러운 찐빵.

역시 이 집의 찐빵이 최고야!

이 만큼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국 음식은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사랑한 한국 음식> 포스팅 중




이 시의 작가는 사사키 토모미(Sasaki Tomomi)이다. 

한국 대학 부설의 한국어교육기관에서 가르칠 시절, 고급반에서 그녀를 만났다. 토모미는 학생이라기보다 친구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갑내기에, 컴퓨터 관련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었으며, 문학을 비롯해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우리에게 있었다. 


음식의 시를 쓰라는 과제를 부여 받고 몇몇의 학생들은 책상에 엎드려 ‘아무 말대잔치’로 글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토모미는 그 자리에서 시 몇 편이라도 쓸 기세로 신나게 글을 적어나갔다. 


토모미는 글쓰기 능력이 뛰어났다. 

교육원에서 주최하는 외국인 글짓기 대회에서도 1등을 했을 정도다. 그 이후, 서울시에서 개최한 외국인 글짓기 대회에서 2등을 해서 서울시장으로부터 상을 받았고, 자원봉사 단체에서 한국 봉사자들과 같이 했던 시 짓기 대회에서도 입상한 경력이 있었다. 그러한 힘은 그녀가 기자 출신이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글을 잘 쓰는 학생들의 표현력과 감수성을 볼 때면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하곤 한다. 그것은 바로,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되, 사물을 보는 시선이 따뜻하다는 점,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숙련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어를 일 년 가량 배운 외국인이 쓴 한국어’라는 꼬리표가 붙었어도 당시 토모미의 글쓰기 능력은 상당히 수준 이상이었다. 그것은 사물과 현상을 보는 비뚤어지지않은 자세에서 왔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외국에 살면, 으레 자국 문화와 다른 이문화의 모습을 보고 놀란 표정을 감추기어렵거나 당황하게 된다. 나만 해도, 통닭에 머리가 붙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거나(관련 포스팅: "통닭의 대가리는 어쩌라고"), 대만인들이 내게 말끝마다 “왜?”라고 묻는 말투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관련 포스팅: “왜냐고 물으신다면”) 타문화를 향한 객관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단, 그 나라 사람들에게 자칫 불쾌감을줄 수 있는 “니네 나라는 왜 그래?”라는 투의 질문이나 투정은 삼가는 걸로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할 수는 있다. 그것은 한국을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뼈저린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의 군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던 미국인은
 “쳇, 한국은 도대체안 썩은 데가 없어.”라고 했고,
한국 식당을 둘러보고 나오던 한 일본인은
 “한국도 이 정도면 많이 발전했네.”라고 했으며,
국적이 기억나지 않는 한 외국 학생은
“한국 여자들은 다 성형한다면서요? 다들 성형발이죠?”
라고 내게 말했다.


이것은 외국인들이 내 면전에서 직접 건넨 말이었다. 이 모두가 사실이라 치더라도, 이들에게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입력과 압력이 있었을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해 좋은 얘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잠시라도 머물며 살았던 곳에 대해 좀 더 애정어린 시선을 갖고 현지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면밀히 관찰한 뒤 자신의 견해-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든-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가 타문화권에 들어와 머물며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생활을 선택했다면 말이다. 아울러 자신들의 발언이 현지인들에게 어떻게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한 번쯤 찬찬히 생각해 보아야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내게 제대로 알려준 사람은 단연 토모미였다.

일본인과 비교했을 때 어색하고 불편한 한국인의 태도가 토모미에게도 분명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토모미가 타문화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유쾌했고, 유머러스했으며, 따뜻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공부했던 육 개월 가량 그녀가 한국에 관해 쓴 글들을 사무실에  앉아 키득거리며 읽곤 했는데, 그녀의 글을 그냥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스쳤다. 당시 나는 한국어교재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던 차였고, 토모미의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에게 한국 일상 문화를 제대로 알려주며,
그에 맞는 한국어 표현도 배울 수 있는 교재를 만들어 보자


우리는 결국, 했다. 

다음은 책에 실린 토모미 글의 일부이다. 

물론 교재의 성격에 맞게 어휘와 문법, 표현 등을 수정하는 작업은 내가 맡았다. 




거기는 호박의 자리입니까?

지하철문이 열렸다. 양 손에 검은 비닐을 든 아줌마 부대가 들이 닥친다. 한 여인이 두 눈을 부라리며 내 옆 자리로 몸을 날리며 앉았다. 그녀의 묘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고추가 잔뜩 들어 있는 검은 비닐 봉지와 호박 두 개를 한꺼번에 맞은 편의 빈자리를 향해 던지는 것이었다. 순간 푸릇푸릇한 고추는 허공에서 눈처럼 흩날렸고, 호박들은 무사히 빈자리에 착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왜 호박의 자리까지 맡아야 했을까?나는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그 때였다.  “야! 여기 와! 빈자리 있어.” 아줌마의 친구는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녀는 다급해 보였으나 친구의 성의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바닥에 떨어진 풋고추를 하나씩 주우며 자리를 향해 갔다. (하략)


가는 ‘마음’이 고와야 오는 ‘마음’도 곱다

한국 사람들은 자리를 잘 양보한다고 들었다. 한국에 와서 보니까 그것은 정말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도 한국사람처럼 전철이나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노력한다. 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자리를 양보하는데 그러면 그분들이 내릴 때 당신들의 자리를 가리키며 “아가씨, 여기에 앉아요” 라고 말해준다. 혹은 자리가 난 곳을 보면 나를 툭툭 치며, “아가씨 저쪽 자리 비었어요. 빨리 앉아요. 빨리.”라고 알려준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빈자리에 얼른 가서 앉는 것이 좀 쑥스러웠지만 나를 특별히 신경 써 준 그 분들의 마음에 가슴이 한결 훈훈해지기도 했다.
 이때 생각 난 한국 속담이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나는이것을 이렇게 바꿔 보았다.
 “가는 마음이 고와야 오는 마음이 곱다.”

이상 <<내겐 너무 매운 한국>>의 일부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47991


책 출판을 준비하던 시절, 토모미가 우리집에서 상당 기간 동안 합숙을 하다시피 머물렀다. 서로 다른 나라 사람과 함께 작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쓰는 일이 이렇게 유쾌할 줄은 정말 몰랐다.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 언급하며 “맞아, 맞아, 나도 그랬어.”라는 말을 추임새로 넣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일은 흔한 기회가 아니다. 그것도 내 나라 말로 말이다! 

나는 이러한 신나는 대화 방식을 토모미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우리가 쓴 <일본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재>는 인기리에 판매되지 않았다. 

하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팔리고 있다. 10%의 인세를 우리가 각각 5%씩 나누어 갖는데, 내 몫의 인세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공간인 <나눔의 집>으로 간다. 그곳에 꾸준히 인세를 보낼 수 있을 만큼의 책이 팔린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앞서 소개한 토모미가 쓴 <찐빵의 시>는 13년 전의 글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변함없이 찐빵을 좋아한다.

그리고

현재

토모미는 한국 남성과 결혼해 베트남에 산다.

베트남에서도 글을 쓰고 편집도 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기사라고 했다. 뉴스 기사, 잡지 기사, 한일번역기사… 등등. 그리고 내년부터는 베트남항공 일본노선 기내지 편집장을 맡을 예정이라고도 했다.


쓰는 일에 파묻혀 있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써야 이 일이 끝나는 걸까?”

그러나 그녀가 일에 쌓여 있어도 마냥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번역을 할 때, 한국 광고주와 얘기를 할 때, "정말 한국어 배워두기 잘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도 전했다. 한국어는 그녀에게 변함없이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 있었다. 참 다행이었다.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새댁 토모미’는 베트남에 살며, 한국인 이웃과 종종 어울린단다.


한 번은 토모미가 한국인 이웃에게 고향을 물었더니 그 이웃사촌은 이렇게 대답했단다.

제 고향은 찐빵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그 말을 들은 토모미는 무척 반가운 나머지 이렇게 대답했다고 했다.

안흥이군요!

찐빵을 사랑한 그녀는, 베트남에서 만난 안흥댁과 종종 한국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모두 “원조 한국 음식”을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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