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모호성
어떻게 사물과 풍경을 보는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메커니즘은 감각 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들에 대한 뇌의 해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오감을 통해 세상을 감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그린다. 시각 정보는 뇌가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 약 반을 차지하며 세상 인식의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다. 우리는 어떻게 사물과 풍경을 보는가?
시신경; 우리 눈에 비친 풍경은, 사진기의 건판에 해당하는 눈의 망막에 투영되어 망막에 밀집한 광수용체에서 검출한 빛의 위치, 색깔과 세기를 뇌가 해석하며 인식된다. 이 정보들은 약 100만 개의 시신경 세포로 구성된 시신경 다발을 통하여 뇌의 시상(Thalamus)으로 전해진다. 이때 시신경은 단순한 전달 역할만이 아니라, 정보를 집산하고 변환하여 일종의 코드화된 활동전위(action potential, 작동전위) (용어설명; 활동전위) 신호들을 발생시킨다. 이 디지털화된 작동전위 신호가 눈에서 받아들인 모든 시각 정보를 전달한다.
시신경 특성; 각 시신경은 망막의 해당 영역, 즉 검출 영역을 갖고 있으며 검출 영역 내에 분포한 광수용체로 들어온 신호를 집합 변환하여 디지털화한 정보로 전달한다. 각 시신경의 검출 영역은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뉘어져 있다. 두 영역은 서로 상반되는 반응 신호를, 즉 양(강화)과 음(억제)의 신호를 내보내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두 영역에 넓게 퍼져 있는 빛에 대해서는, 서로 상쇄 작용을 함으로써 작동전위를 내보내지 않는다. 반면, 중심부나 주변부에만 들어오는 작은 모양의 빛에 대해서는 강한 작동전위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시신경은 점(點)광원에 대해 강하게 반응하는 반면 검출 영역을 덮는 퍼진 광원에 대해서는 약하게 반응한다. 그러므로 시각 정보는 윤곽과 콘트라스트에 민감하게 인식된다.
매칭과 모호성; 시신경은 뇌 중심부에 위치한 시상(thalamus)으로 연결되며 1차 정보처리를 거쳐 후두엽에 위치한 PVC (Primary Visual Cortex; 일차 시각피질)로, 그리고 측두엽과 두정엽 피질로 전해지며 처리과정을 거친다. PVC에서는 들어온 정보로부터 선, 곡선, 윤곽을 추출하고 이들로부터 모양을 추출한다. 이 상태에서 뇌가 인식하는 정보는 윤곽으로 존재하는 마치 뎃상의 이미지와 비슷할 것이다(*). 이렇게 윤곽과 모양으로 이루어진 상향식 (뇌로 향하는) 데이터는 기억되어 있는 정보들, 경험, 감정 등 기존 정보들과의 매칭을 통해 인식이 이루어진다. 이는 마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유일하지 않다. 데이터 외적 변수들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모호성을 잘 보여주는 예가 ‘루빈 잔’의 인식이다.
그림의 루빈 잔을 볼 때, 뇌의 시뮬레이션이 가운데 흰 부분을 주목하여 출발하는가 또는 양쪽의 검은 부분에서 출발하는가에 따라 인식되는 상이 다르다. 즉 첫 시선이 어디에 꽂혔는가에 따라 그림의 인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또는 시뮬레이션의 출발점이 잘못되면, 예를 들어 거리를 잘못 잡든가하면, 인식된 상과 대상이 일치하지 않을 수가 있으며 이때 사물 인식은 거듭되는 시뮬레이션으로 인해 지연되게 된다. 우리의 뇌가 특히 빠르게 변하는 시각 정보를 충분히 빨리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물 인식이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이러한 상향식의 데이터 정보 추출과 하향식의 기존 정보와의 매칭 체계는 시각 정보만이 아니라 다른 감각 기관의 정보처리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뇌의 정보처리 과정이다. 즉 뇌의 세상 인식은 기억 정보와의 매칭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세상 인식은 선천적이라기보다는 후천적으로 배워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갓난아이의 인식이 처음에는 느리다가 급격히 빨라져 가는 것이 사물과 언어 등을 통해 배운 기억이나 개념이 쌓여가기 때문이다.
인식은 개인적, 한정적, 가변적이다. 이렇듯 우리가 인식하는 마지막 결과물은 비록 같은 감각정보라도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루빈 잔의 경우는 매칭 때 우연한 시작점 선택이 인식 결과의 차이를 만들고 있다. 게다가 감정이나 기억의 피드백까지 고려하면 입력 데이터는 더욱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인식 과정에서 이러한 다양성은 피할 수 없으므로 우리 각자가 그리는 세상 그림은 아주 개인적인 세상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보고 느끼는 세상이 한계를 갖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실존 세상이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답답하고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고 위로할 수 있는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즉 우리의 인식 기능은 매우 한정되어 있고 또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오늘 저녁 내가 내린 결정이 또는 쓴 글이 내일 아침에는 아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일 아침에 세상은 단지 사소한 변화로도 얼마든지 희망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과학은 이야기해주고 있다.
(*) E. Kandel; <The age of insight> (§The brain's perception of visual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