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석천 Oct 05. 2021

주사바늘 공포, 공포의 패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요즈음 언론에 자기 어깨에 꽂힌 주사 바늘을 쳐다보며 코로나 백신을 맞는 이들의 화면이 자주 실린다. 겁먹은 얼굴로 팔에 꽂힌 주사 바늘을 쳐다보고 있는 이들을 보며 나에게도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공포란 일종의 확대 재생산된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사바늘 공포증을 가진 사람의 머릿속에는 주사 바늘이 어깨 삼각근에 ‘꾸욱’ 박혀 들어가는 그 장면이 정지한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주사기를 들고 온 간호사가 어깨를 ‘딱’ 때리는 순간 벌써 주사 바늘은 들어가버렸고 기다릴 때보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휴~~“ 하고 아픔도 공포심도 사라져 버린다. 정지하고 있던 시간이 ‘딱’하며 돌아가는 순간, 공포감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우리의 다른 공포감들은 어떨까? 마찬가지로 일순에 사라져버리게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공포는 현실이라기보다는 상상이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공포의 이미지일 뿐이다. 이 시간 정지 이미지는 주사공포증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 곳곳에서 우리를 사로잡아 꽁꽁 묶으려 한다. 주사공포증은 그나마 시선을 다른 데로 옮길 수 있는 주제이나 그렇지 못한 실직이나 낙방의 공포는 급기야 우리를 불안과 우울증으로 몰고 간다. 자유로운 정신을 빼앗아 버리고 창조의 공간과 여유를 사라지게 한다.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수 없다는 토끼 궤변도 (용어설명; 제논 궤변) 시간 정지류의 예이다. 실직이나 낙방의 공포감도 시간이 정지된 이미지로 인하여 증폭되는 감정들이다. 이러한 불안감과 공포감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감정들이다. 예로부터 어떻게 이들 감정에서 벗어나는가는 아직까지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영원한 인류의 숙제일  것이다. 솔로몬은 가르친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라고.     


또 비틀즈도 노래하였다.

“Let it be.”

는 50년 전 유행하던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지만 명상의 요체이기도 하다.

“Be aware.”

“움켜 잡지 말라. 시간이 흐르게 하라.“     


며칠 전 명상중 관의 세밀함에 대해 글을 올렸었다. 그러나 현미경과 같은 세밀함이 아니다. 현미경이 정지한 대상에 대한 세밀함이라면, 관은 변화에 대한 세밀함이다. 아니 시간에 대한 세밀함이다. 호흡으로 아랫배의 오르락 내리락하는 움직임을 세밀하게 쫓다보면 어느 순간 호흡이 순해지며 의식이 차분해진다. 즉 시간의 흐름과 동기화되는 세밀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선가의 경책에는 명상의, 어찌보면 느긋한 자세와 좀 다른 뉘앙스의 가르침도 있다. 선가에서는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할 때,     

"고양이 쥐 잡듯 하라."

“어미닭이 알 품둣 하라.”

라고 가르친다.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경책이다.    


기억이란 시간 정지 이미지이다. 기억의 한 장면은 카메라 사진 찍기이다. 카메라 사진은 심플하다. 장면이 고정되어 있다. 주사바늘 공포가 고정되어 있다. 시간이 흘러야 드라마가 있고, 삶이 있고, 생명이 살아 있다. 아마 우리의 주사바늘 공포는 이 정지해 있는 시간 함정에 빠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시간을 흐르게 해 주고 우리를 함정에서 꺼내어 주는 지혜이다. 그러나 선가의 가르침은 시간에 대한 또 다른 함정에 대한 경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시간은 정말로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이전 14화 뇌과학 관점의 자녀교육 이중성(R)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