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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라 Sep 12. 2019

사람을 꿈꾸는 곳/ 김해 봉하마을

내게 특별한 여행지 (15), 2013년 8월

  

4년 만에 다시 봉하를 찾았습니다. 대통령이 잠드신 너럭바위 앞에 도착했을 때, 제 마음에 차오른 것은 평온함이었어요. 봉분을 높이 세운 왕의 무덤과 달리 평평한 대지, 그만큼 낮게 펼쳐져 있는 무덤. 한참을 서 있었는데 마음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습니다. 그 평온함은 그분의 치열한 삶이 남긴 여백이자 자취 같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재능과 사랑을 다 쓰고 간 삶이 남기는 그런 평온함이었어요.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대통령 재직 기간 중의 어떤 정책을 좀 잘하고 못하고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결과에 국한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만큼 자기답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과 세상에게 정직했던 분의 삶의 향기는 지금도 방문객에게 넉넉한 여백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너럭바위 앞까지 걸어가는 동안 수많은 ‘말’로 이루어진 길을 밟고 갔습니다. 이젠 돌아가시고 없는 분에게 보내는 말들이었어요. 1만 5천 개의 박석에 새겨진 그 말들을 다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그 중에서 제 마음을 울컥하게 한 말이 있습니다.

  

 서현아, 엄마가 존경하는 분이란다.


이 말들이 그분께 전해졌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어요. 후대에 여기 오는 누군가가 이 말을 읽을 거라는 것. 우리가 느꼈던 이 모든 감정은 사라지고,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몇 마디의 ‘말’ 뿐이지만, 이 말에 담긴 참뜻을 후대의 누군가는 읽어낼 거라는 것. 여기 새겨진 말들은 우리 시대 가장 소중한 기록의 일부입니다. 우리 시대의 희망의 기록이자 아픈 좌절과 상처의 기록입니다. 

  

부엉이바위 위로는 새 한 마리가 날개를 직선으로 펼친 채 훠이훠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올려다보기만 했을 뿐 그곳에 오르고 싶지는 않았어요. 여전히 그 자리는 아프고 무거웠습니다. 대신에 사자바위에 올라 봉하의 여름 들녘을 내려다보았어요. 방문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시며 봄에 따뜻해지면 다시 보자시던 분은 영영 떠나고 그분이 남긴 한 마디 말이 들판 한가운데 새겨져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산길을 내려와 새로 생긴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규모는 작고 소박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삶의 자취가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어요. 그곳을 둘러보며 저는 그 삶이 언제나 ‘도전’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도전’이란 기존의 가치와 편견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오늘날 이 말은 함부로 쓰이면서 그 말이 원래 지닌 함의를 잃고 있습니다. 이명박의 4대강은 도전이 아니라 자연과 삶에 대한 폭력입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삶이, 정치인으로서의 행적뿐 아니라, 그 삶 전부가 어떤 진정한 ‘도전’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범인은 따라갈 수 없는 성격의 도전이었죠.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지역감정과 맞서 싸우고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퇴임 후에도 도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고, 시민민주주의를 연구하고, 농부로 돌아가 ‘생태마을’의 실험을 꿈꾸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그토록 격렬한 반감을 불러왔던 건, 어쩌면 그분의 그 ‘도전’이 아니었을까요. 그 도전에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들, 그 도전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도전을 지지했던 사람들, 그것에서 우리 삶을 삶답게 해주는 어떤 가치와 희망을 발견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도전을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은 기득권층이었죠. 보수 뿐 아니라 진보의 기득권을 쥔 이들 또한 똑같이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90의 나이에도 죽기 직전까지 조각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해요. 그리고 죽을 때 이런 말을 남깁니다. 

 

 이제야 조각을 좀 알 것 같은데 죽어야 하다니….

  

저는 그분 또한 그렇게, 죽음이 아까울 만큼 삶을 좋아했고, 그래서 그 삶을 억압하는 것들에 그렇게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아까울 만큼 사랑하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퇴임 후에도 그렇게 열정적이었죠. 할 일이 넘쳐났던 분이에요. 그런 그가 삶을 버렸을 때는, 살아있는 나날이 진정 죽음보다 못한 것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낮, 작열하는 햇살 속을 땀 흘리며 걸어가면서 이 세상에서 한 ‘인격’의 가치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한 인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감을 이해하지 못한 시대가 안타까웠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곁에서 그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영감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그 인격을 죽이고 만 세상이 안타까웠어요. 

 

일상에서 많은 불분명한 욕망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산들이 아늑하게 둘러싼 이 봉하마을에서 나는 오롯이 한 가지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천 년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린 시인처럼, 저 또한 경건한 마음으로 한 인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고통과 불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사람들의 탄생을 고대했습니다. 인간의 부활을 꿈꾸었어요.  

 

무덤 주위의 빈 공간은 그러한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다림으로 채워진 공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높다랗게 세우곤 하는 그 어떤 표지석도 없이 넓은 광장에 놓인 나즈막한 너럭바위, 그 위에 쓰인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한 마디, 그리고 무덤으로 향하는 길 위에 새겨진 작은 소망의 언어들…. 이 공간은 특정한 의미를 비워둔 채로 그 비어 있음으로 인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만히 껴안아주고 있었습니다.               

 

10분이면 한 바퀴 도는 이 작은 마을의 상징성이 저의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 여행이었습니다. 이곳이 단지 한 인격이 죽음을 맞이한 곳이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무수한 사람들에 대한 염원을 담은 곳이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므로 이곳은 시간과 시간 사이의 작은 틈새, 새 날이 밝기 전의 여명 같은 곳입니다. 티벳 사람들이 말하는, 죽음에서 새 삶으로 넘어가기 전의 ‘대기’를 의미하는 바르도 같은 시간. 그분이 추구한 가치는 특정한 시점에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완성을 위해서는 더 긴 역사의 호흡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을의 상징성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별로 한 일도 없이 세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시원한 메밀국수 한 그릇을 사먹고 정류장에 앉아 오기로 한 택시를 기다렸어요. 마을에서 진영역까지는 금방입니다. 사람들은 오고 또 떠나지만, 길가에 가지런히 세워진 노란 바람개비들은 한결같은 그리움이 응축된 얼굴로 봉하의 짙푸른 들녘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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