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식 채식 추구하는 나도 외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가족 생일이나 특별한 기념일 식사 때, 손님 대접할 일 있을 때 그리고 숙덕이 데이트하다 또는 모녀가 싸돌아다니다 밥 먹을 때다. 아무리 안 해도 한 달 한 두번은 외식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비건 생활 10년이니 비건 식당 찾아다니는 일에도 이골이 났고, 정말 만족스런 식사 쉽지 않은 것도 익숙해 졌다.
채식 자연식물식을 추구하는 비건이 사회 생활에서 불편을 감수하는 건 특별할 것도 없다. 가족 행사로 비건 식당 고르고 예약하는 일쯤이야 젊은 딸 아들이 정보력을 동원해서 해결해 주는 덕을 보면 된다. 그럼에도 솔직히 비건식당 갈 때마다 늘 안고 돌아서는 아쉬움과 찜찜함을 어쩌지 못한다. 좋은 재료를 쓰고 건강한 방식으로 준비하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못내 남는 아쉬움이 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남동생과 숙덕과 딸 넷이서 같이 먹은 점심도 그랬다. 젊음의 거리 대학로와 혜화에 비건식당 찾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내가 알기로 비건은 젊은이들이 많다는데 왜? 널린 게 먹고 마시고 즐길 곳인데 채식당은 왜 힘들게 찾아야 하냐고. 그날도 찾고 찾아 혜화에서 성북동 쪽으로 걸어 30분 거리에 비건식당을 예약했다. 처음 가는 비건식당, 실망할세라 밥 있음에 감사하자 맘을 비우며 갔다.
손님은 우리뿐이고 메뉴 선택지는 딱 2개였다. 나물돌솥밥 22,000원 들깨돌솥밥 23,000원. 들깨돌솥밥은 들깨씨와 들깻잎을 얹어 옹기에 지은 현미조금 섞은 영양쌀밥이고 나물돌솥밥은 묵나물을 얹은 게 달랐다. 곁들여 나온 음식은 맑은 채소된장국, 구운 김, 피클, 두부톳무침, 우엉조림, 브로콜리 2쪽 방울토마토 1개 샐러드 그리고 비빔용 간장소스였다. 푸짐한 밥 덕에 생각보다 양이 부족하지 않게 잘 먹었다.
돌아오는 길, 4인분 9만원 영수증이 슬금슬금 말을 걸어왔다. 그만하면 양호하다 위로하건만 역시 비건식당 밥값 유감이지?그거였다. 감사하는 정신승리를 해도 상차림에 비해 비쌌다. 지금까지 손님이 와글거리는 비건식당을 본 적 있던가? 없다. 깔끔하고 건강한 현미식 채소밥 비건식당을 내가 열어야 하나? 매번 농담할 정도가 됐다. 쉽고 깔끔한 방식에 적절한 가격에 환경 친화적인, 완전한 건강식, 평범하고 소박한 밥상. 현미식 채소밥집은 왜 없냐며 말이다.
어쩌면 이정도는 그래도 양호하다 해야겠다. 정크 비건을 나는 더 못견뎌한다. 정체 불명 이것저것 끼얹은 육식을 흉내낸 '비건식' 말이다. 공장에서 가공한 가짜 고기며 가공육이며 치즈에 소스 등, 그런 정크를 비건이라 해야 하는지 난 솔직히 모르겠다. 자연에 가까운, 탄소배출도 에너지소비도 적게 먹고살자는 거다. 건강한 한식 자연식 채식당은 왜 없냐고!!!!
비싼 돈 주고 비건식당 밥 먹은 후의 뒤끝 때문에 다음 글은 자연스레 '현미밥채식 밥상 예찬'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