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북극의 빙산이 녹아 섬이 잠긴다는 거짓말>에 이어서 <찬란한 멸종>의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를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담습니다.
과학 상식의 범주에서 저는 웬만한 독자는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저자의 관점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웬만한 독자라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사람이 찰스 다윈이라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다.
어릴 때는 퀴즈에 강한 편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알고 모르고 문제를 떠나 다른 사람 말에 반응하는 순발력과 태도가 바뀐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과 무관한 이야기로 흘렀는데, 이참에 제 독서 방식을 칭하기도 하는 '내 삶을 차리는 독서'에 대해 한번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글이 속한 연재 이름인데요.
지난 2021년 '사우리'라는 이름으로 구체화했던 방법을 진화시킨 것이 바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입니다.
독서법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인들에게 설명하면서 사우리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사골 우리듯이 읽는다는 의미로 붙였는데, 읽는다에 초점을 두기보다 교훈이나 영감을 기록하고 써먹는데 초점을 두는 일이다. 사우리로 10권 이상 책을 읽는 가운데 함수에 비견할 관점이 생겨났다.
저는 소설에 푹 빠지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책 자체에 몰입하는 부분과 이를 소화하여 제 삶에 반영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일을 적절하게 배분합니다. 이를 위해 '생각을 말로 차리는 것'이 바로 '내 삶을 차리는 독서'라 하겠습니다.
제가 웬만한 독자가 아닌 이유를 여기서 발견합니다.
나는 찰스 다윈이다. 케임브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지만 스스로를 지질학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후대에 지질학자로도 평가받고 있다.
다윈이 지질학자라는 사실을 처음 듣습니다.
휴양지로 찾아가 스노클링 하며 시각적으로만 익숙했던 산호에 대한 낯선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산호가 죽으면 산호의 석회질 골격이 쌓여 굳으면서 석회암이 된다. 분필의 주성분이다. 석회성 골격이 얕은 바닷속에 쌓여 만들어진 암초를 산호초라고 한다. 산호초는 모양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거초fringing reef다. '옷자락 거裾' 와 '물에 잠긴 바위 초礁'로 이루어진 단어다. 그러니까 옷자락 모양으로 섬을 둘러싼 물속 바위라는 뜻이다. 둘째는 섬과 산호초가 바다로 분리된 보초다. 여기서 '보堡'는 둑 또는 제방이라는 뜻이다. 셋째는 섬은 없고 고리 모양의 산호초만 남은 환초環礁, atoll reef다.
거초는 열대 바다 섬 주변에 있다. 섬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산호초와 섬 사이에 석호潟湖, lagoon가 있는 보초가 된다. 그리고 섬이 해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으면 환초만 남게 된다.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을 실천합니다. 한자사전을 찾아본 후에
거초(裾礁) 작명의 기원을 퍼플렉시티에게 물었습니다.
裾'는 '옷자락'이나 '기슭', '끝자락'을 의미하고, '礁'는 '암초', '산호초'를 뜻합니다. 즉, '거초'는 섬이나 육지의 해안선 가까이에 붙어 발달하는 산호초를 가리키는 말로, 산호초가 마치 육지의 옷자락처럼 해안선을 따라 펼쳐져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 설명 중에 다음 내용을 보면서 Barrier reef가 한자어로 보초(堡礁)에 대응한다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Fringing reef는 산호초의 세 가지 주요 유형(프린징 리프, 배리어 리프, 환초) 중 하나로, 그중 가장 흔하며 해안선 가까이에 위치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Barrier reef(장애초)와 달리 깊고 넓은 라군이 없거나 매우 얕은 라군만 존재합니다.
확인을 위해 한자 사전을 봅니다.
그렇다면 보초의 존재는 해수면 상승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침 책에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나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다. 사람들은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공통 골격 화석은 뼈 모양을 한 돌일 뿐 뼈가 아니다. 보초를 비롯한 산호초 역시 생명의 혼적일 뿐 생명은 아니다. 한때 생명인 적이 있긴 하다. 바로 산호다.
생명이 아닌 산호초와 생명인 산호라니? 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퍼플렉시티에 부탁해 만든 비교표를 첨부합니다.
또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란 이름은 호주 여행할 때 하늘에서만 보았던 기억을 불러옵니다.
5억 년 전부터 지구에 살았던 산호와 산호초는 지구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산호초는 생물학적인 역할 외에도 기후 환경에 크게 기여한다. 건강한 산호초는 탄소를 순환시키고 격리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지구 기후변화를 완화한다. 예를 들어 산호는 바다에 녹아 있는 칼슘과 이산화탄소를 결합해 탄산칼슘을 만드는데, 탄산칼슘은 조개껍데기와 산호초의 재료다. 즉 우리 산호초는 생물 다양성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탄소 순환과 해안 보호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일을 5억 년 이상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로 인해 생명체의 육상 진출이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생명체가 육상에 진출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리 덕분이다. 우리는 바다에 녹아드는 이산화탄소를 마그마와 함께 올라오는 칼슘과 마그네슘과 결합해 탄산칼슘과 탄산마그네슘으로 만들었다. 탄산칼슘은 조개껍데기의 재료가 되었고 탄산마그네슘은 흙의 재료가 되었다. 우리 덕분에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점점 줄어들었다.
바로 위 다발말[1]을 클로드에게 주어서 도식화를 부탁했습니다. 인공지능 길들이기 과정에서 경험으로는 아쉬운 면이 있지만 무료로 텍스트만 주고 바로 그림을 그리는 기능은 클로드 소넷이 최고인 듯합니다.
산호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다발말을 이어서 보겠습니다.
그렇다. 우리 산호의 가장 큰 사명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뭐, 우리 혼자 한 일은 아니다. 바다는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4분의 1을 흡수한다. 이걸 그냥 두면 해양이 산성화 되어서 해양 생물들이 견딜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을 탄산칼슘으로 제거해 해양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해 왔다. 무려 5억 년 동안이나. 딱히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구 기후에 정말 큰일을 했던 것이다.
다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가 등장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1981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중략> 그런데 장엄하고 아름다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문제가 생겼다. 내가 색을 잃고 하얗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산호는 표면을 감싸고 있는 공생 조류제의 광합성 작용으로 형형색색 빛깔을 띠는데. 높은 수온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조류가 산호를 떠나고 죽으면서 산호가 하얗게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백화 현상'이라고 한다. <중략> 지구가 더워지면서 해수면 온도도 올라갔고 그 여파로 산호가 색을 잃고 있다. 산호가 사라지면 다른 동물들도 더 이상 대산호초에서 살 수 없게 된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도 위험에 처했군요.
2010년 이후 백화 현상이 정차 심해지고 있다. 2021년에는 마침내 유네스코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에 올리려고 했다. 이 목록에 오른 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세계 유산 지위를 빼앗긴다. 실제로 영국의 도시 리버풀은 2012년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에 오른 이후 9년 만인 2021년 세계 유산 지위를 잃기도 했다. 큰일 났다고 여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가 목록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약 1조 700억 원의 투자를 약속하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기후 법안도 제정했다.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부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방법은 하나. 산호들이 대량으로 죽기 전에 수온이 내려가야 한다. <중략>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가 결국 '위기에 처한 유산' 목록에 오르고 이어서 세계 유산의 지위를 잃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산호가 이산화탄소를 먹고사는데, 이산화탄소 때문에 멸종을 앞두고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존재는 지구 대기와 바다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에 의존했다. 우리의 사명은 이산화탄소 제거였는데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아져 우리가 더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이산화탄소 제거의 종결자인데 이산화탄소 때문에 우리 존재가 종결되려고 한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하지만, 인간에게 산호의 멸종보다 더 심각한 내용은 이어지는 문장입니다.
5억 년은커녕 등장한 지 수백만, 수십만, 심지어 수만 년밖에 안 된 다른 생명체의 운명을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 그들은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에 우리보다 더 취약해서 버틸 수 없는 존재인데 말이다.
[1] <한국말 말차림법>에서 제안한 단락에 대한 토박이 말입니다. 왜 다발말인지는 <언어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일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3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36. 비극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137. 운명, 연기(緣起), 확률 분포 그리고 테라포밍
138. 인간이라는 한계, 인간이라는 구원
139. 아차, 바로 이런 상태가 감정의 덫에 걸려든 상태지
141. 악(惡)의 낙수 효과는 현실이고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143. 자신만의 기억을 위해 싸울 때 당신은 인간답다
144. 시각이 세상을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널리 퍼진 착각
145. 나는 나로 살아야 숨통이 트인다
146. 사랑은 우릴 어디론가 데려다줄 것이다
147. 우리는 실제 세상이 아니라 뇌가 보여주는 것을 인식한다
148.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 곧 나를 이야기한다
150. 준비가 아니라 나를 알고, 나를 믿고, 해 나가는 것
151.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