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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라는 미세먼지 그리고 제정신이라는 착각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지난 글에 이어 <사람에 대한 예의> 2부 <어둠 속, 갑자기 불이 켜지면> 중에서 <편견이라는 미세먼지>, <이 상상은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발 조용히 좀 해요>를 읽고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생각을 쓰는 글입니다.


편견이라는 미세먼지 그리고 제정신이라는 착각

먼저, <편견이라는 미세먼지>에서 밑줄 친 내용입니다.

부끄러움을 깨달은 건 동네를 빠져나온 다음이었다. 사실 그들이 내게 피해를 준 건 없었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나를 불안에 떨게 했던 것은 나 자신의 편견이었다.

이 글을 읽으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폭력적인 언사를 들으면 두려움을 떨치려고 혼자 머릿속으로 망상을 펼쳤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책의 맥락에서 살짝 벗어나 편견이 만드는 망상과 불안이 스스로를 어디에 가두는가를 돌아봅니다.


그랬더니 <편견이라는 미세먼지>라는 표현이 새삼 멋지게 느껴집니다. 더불어 작년에 읽었던 <제정신이라는 착각>도 떠오릅니다. 모든 인간이 편견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설명하는 뇌과학 책이죠.

<제정신이라는 착각>을 읽고 쓴 글
1. 우리 머릿속 세계상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2. 지각을 상징인 언어로 표상하는 과정이 바로 생각
3. 쌍안정 지각 그리고 Linguistic Self
4. 우리 모두 미쳤다고?
5. 우리는 세계를 만든다


희망은 반성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저자는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주인공 토끼 주디의 말을 인용합니다.

‘누구나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뿐"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희망은 반성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편견에 맞서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용기를 쓰려면 먼저 두려움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멈춘 갈망을 확인하기 위해서 반성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은 “판사를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강문대 변호사가 쓴 글입니다.

"노동사전에 대해 연일 쏟아지는 야릇한 판결을 보며 그런 판결을 선고한 판사들을 이해하기 위해" 가설을 설정해봤다고 한다. 우선 이들 판사들의 친구 중 노동자, 특히 노조 활동을 하는 노동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런 친구가 한 명도 없으니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스산하고 노조 활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피부에 와닿게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판사가 맘 편히 가는 동창 모임이나 교회 모임 등에서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기업가 아니면 관리자일 것이고…

판사들의 반복적인 행태를 보며 느끼는 좌절과 정반대의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스스로가 노동자였던 소년공 출신 대통령을 대한민국 국민들이 택했다는 사실입니다.[1]

다음 글과 거의 똑같은 엘리트 사회의 풍조에 대해 예전에 한 교수님에게 이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 변호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판사들이 참석하는 연수원 동기 모임에서 술값은 로펌 변호사들이 낼 것"이고, "이들과 같은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하는 주장들도 살갑고 설득력 있게 느껴질 것"이고, <중략> 결국 "기업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행위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신분 상승은 일방향이라 반성이 어려운가?

다음 글을 읽을 때는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신분 상승' 욕망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이렇듯 작은 사회에서 아웅다웅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직역이기주의의 늪에 빠져든다. 기자들은 기자들 사회에, 검사들은 검사들 사회에, 의사들은 의사들 사회에 갇혀 산다. 그 세상이, ‘자기들만의 리그'가 전부인 줄 안다. 기자가 최고인 줄 알고, 검사가 최고인 줄 안다. 자신들이 가장 고생하는 양 집단적으로 자기 연민에 빠진다. 그것만일까. 자신이 속한 분야의 화제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깜깜 절벽이 된다. 언제부턴가 기자들이 쓰는 기사나 칼럼을 읽으면 ‘우린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직역이기주의'[2]라는 생소하지만 적확한 표현을 만납니다.

직역(職域)은 특정한 직업의 영역을 말한다. 직역이기주의는 자신의 직업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직역이기주의 안에서도 또 남녀차별이라는 오랜 장벽이 존재한다는 진단입니다.

왜 ‘여기자'라고 쓴 걸까. '기자'라고 써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것이 팩트라서? 같은 팩트라도 '남(男) 기자'라고는 안 쓰지 않는가.


생각을 바꾸는 일의 어려움에 대하여

이어지는 내용은 <이 상상은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에서 밑줄 친 내용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건 자신들의 존재 기반을 허무는 거니까.

직역이기주의에서 나오는 일은 부모에게 독립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일까요? 저자가 말한 일에 대한 어려움은 <WHY>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어어지는 내용은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 밑줄 친 내용입니다.

이순신은 자신이 백의종군하겠다고 한 적이 없어. 백의종군은 조선 시대 군대의 처벌이었거든. 제삼자가 이 말을 쓰는 건 몰라도 당사자가 "백의종군하겠다"고 떠들 일은 아니지.

그렇군요. 사료에서 무언가 덮으려는 표현이었나요?


주석

[1] 하단 오른쪽 사진의 출처는 사장 남천동 영상입니다.

[2] 퍼플렉시티에 물어보니 검색하는 자료가 많지 않았고, 의사 사회나 간호사 사회를 다룬 기사가 보였습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읽고 쓰는 독후감

1. 비극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2. 인간이라는 한계, 인간이라는 구원

3. 악(惡)의 낙수 효과는 현실이고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4. 자신만의 기억을 위해 싸울 때 당신은 인간답다

5. 나는 나로 살아야 숨통이 트인다

6. 사랑은 우릴 어디론가 데려다줄 것이다

7.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 곧 나를 이야기한다

8. 생각을 하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

9. 군사정권의 유산과 강력한 검언유착을 이겨낸 K-민주주의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4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41. 악(惡)의 낙수 효과는 현실이고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142. 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람들과 역사적인 연금술

143. 자신만의 기억을 위해 싸울 때 당신은 인간답다

144. 시각이 세상을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널리 퍼진 착각

145. 나는 나로 살아야 숨통이 트인다

146. 사랑은 우릴 어디론가 데려다줄 것이다

147. 우리는 실제 세상이 아니라 뇌가 보여주는 것을 인식한다

148.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 곧 나를 이야기한다

149. '왜'라는 질문 없이는 불가능한 지속 가능성

150. 준비가 아니라 나를 알고, 나를 믿고, 해 나가는 것

151.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

152. 확신이 없는 길을 가는 방법은 나 자신을 믿는 것

153. 생각을 하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

154. 북극의 빙산이 녹아 섬이 잠긴다는 거짓말

155. 군사정권의 유산과 강력한 검언유착을 이겨낸 K-민주주의

156. 철학은 학문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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