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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농경 사회의 시작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에 이어서 <찬란한 멸종>의 <떠돌아다닐 수 없게 된 세상>을 읽고 밑줄 친 부분을 바탕으로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화자는 구석기인인데, 신석기인의 삶을 지켜보고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구석기인이 신석기인을 발견하다

노마드 삶을 사는 구석기인 입장에서 정착생활을 하는 신석기인의 삶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마을에 사는 사람은 정말 많아 보였다.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먹을 것과 쉴 곳을 찾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수로 보였다. 게다가 사냥에 나서기에는 노인이 너무 많았다. 애들도 많았으며 여자들은 거의 임신 중으로 보였다. 저들을 어떻게 데리고 다니지? 마을 사람은 이동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이동할 수 없어서 한 곳에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 시대 이름만 외웠다는 사실을 깨닫고, 퍼플렉시티에 두 시대와 생활 방식 차이를 물었습니다.

위의 표에도 드러나듯이 가축 사육도 신석기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짐승들도 마을에 있었다. 바로 옆에 한가로이 풀을 먹고 있는 염소를 늑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쳤다. 심지어 어떤 이는 염소들에게 풀을 던져 주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짐승 역시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과 짐승이 같이 살고 있었다. "저런 짐승이 곁에 있다면 우리는 평생 힘들이지 않아도 먹고살겠네."


아무도 버려지지 않는 편안한 삶

사냥의 어려움에 대한 서술은 '아무도 버려지지 않는 편안한 삶'이라는 소제목과 어우러져 이해를 돕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위험한 사냥을 하지 않았다. 사냥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작은 초식동물이라고 하더라도 사냥하는 일은 어렵다. <중략> 사냥은 위험하다. 사냥하다가 죽은 동료가 얼마나 많았나? 또 함께 사냥하다 큰 부상이라도 입으면 결국 짐승의 밥이 될 수밖에 없다. 부상당한 동료를 언제까지나 보살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냥 능력 이외의 역할도 인정받게 되는 정착 사회에 대한 상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아이와 노인 그리고 병자와 함께 살아간다. 거동조차 힘든 노인과 병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도 마을 사람들은 보살핀다. 이동할 필요가 없으니 아무 때나 아이를 낳아도 된다. 노인들은 자리에 앉아서 소쿠리 같은 도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어린아이를 돌보면서 지혜를 전수한다.


행복한 불공평한 삶

뒤이어 농경 사회가 낳은 불평등을 말합니다.

"온종일 일만 해요."
"아픈 사람이 많아요."
"많이 먹는 사람이 있고 조금 먹는 사람이 있어요."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어요."

2022년 읽었던 <오리진>에서는 이를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라고 표현합니다.

"농사는 우리를 불행하게 할 거예요."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했다. 내 이야기와 두란의 이야기가 너무 다르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고 보니 나와 내 아들은 같은 곳에서 다른 걸 봤다. 아니, 다른 것에 주목했다. 나는 그들의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보았고, 두란은 마을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이해하려다 보니 다음 문장들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는 '전우애' 같은 개념이 떠오릅니다.

저장을 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장점이 또 있다. 우리는 매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짐승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는 전력을 다해야 짐승을 잡아먹을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협력이다. 사냥에 필요한 무리가 다 나서야 했다.

함께 힘든 일을 해냈을 때, 느껴지는 끈끈함과 동질감이 떠올랐습니다.

저장할 게 없으니 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다 같이 배불렀고 다 같이 배고팠으며 도구와 무기를 공유하고 옷도 같이 지어 나누어 입는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딱히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도 없다.

그러한 동질감이 약해지면 힘이 있는 쪽에서는 불평등을 받아들이기 쉬운 마음 상태가 될 것입니다.


구석기인의 삶과 헤어질 결심

이유가 어쨌든 간에 구석기인들의 삶의 방식은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긴 노동 시간과 불평등이 좋아서 농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그들은 환경의 변화에 창의적으로 적응한 사람들 아닌가!


<찬란한 멸종>을 읽고 쓰는 독후감

1. 인류의 멸종은 예정되어 있다

2.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난 사고를 돕는 과학의 쓸모

3. 운명, 연기(緣起), 확률 분포 그리고 테라포밍

4. 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람들과 역사적인 연금술

5. 북극의 빙산이 녹아 섬이 잠긴다는 거짓말

6.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7.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44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44. 시각이 세상을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널리 퍼진 착각

145. 나는 나로 살아야 숨통이 트인다

146. 사랑은 우릴 어디론가 데려다줄 것이다

147. 우리는 실제 세상이 아니라 뇌가 보여주는 것을 인식한다

148.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 곧 나를 이야기한다

149. '왜'라는 질문 없이는 불가능한 지속 가능성

150. 준비가 아니라 나를 알고, 나를 믿고, 해 나가는 것

151.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

152. 확신이 없는 길을 가는 방법은 나 자신을 믿는 것

153. 생각을 하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

154. 북극의 빙산이 녹아 섬이 잠긴다는 거짓말

154. 군사정권의 유산과 강력한 검언유착을 이겨낸 K-민주주의

156. 편견이라는 미세먼지 그리고 제정신이라는 착각

157.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158.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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