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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아니라 뇌(머리)로 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를 쓴 이후에 두 달 만에 다시 책을 펼쳤습니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는 굉장한 영감을 주지만, 뇌를 많이 쓰게 하는 책이라 자주 읽지 못하고 시간을 두고 읽게 되는 듯합니다.


시력이 있어도 보는 법을 배워야 비로소 볼 수 있다

책의 2장 59쪽에서는 <보는 법을 배우다>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단락이 있습니다. 먼저 여기서 밑줄 친 내용을 인용한 후에 떠올린 생각을 기록합니다.

마이크의 눈에는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그는 자기 앞의 물체들을 바라보며 완전히 당황하고 있었다.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그의 뇌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선과 색과 빛의 감각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었다. 눈의 기능이 정상인데도 그에게는 시각이 없었다.

마이크는 시력을 잃은 지 43년 만에 새로운 수술법 덕분에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뇌가 보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두개골 속에 몰아치는 기묘한 전기 폭풍은 세상의 모든 물체들이 감각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우리가 한참 동안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의식적인 정보로 요약된다.

직관에 어긋나는 과학 지식입니다. 과학 팟캐스트를 즐기고 과학 책을 읽는 이유가 반직관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기르려 함이기 때문에 과학 공부를 하는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상적 세계는 물리적 세계와 같지 않다

저자는 시각 장애인 여성이 자기 방의 윤곽과 가구들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모습에 놀라며 그걸 그릴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절대 청사진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앞이 보이는 사람들이 3차원(방)을 2차원(평평한 종이)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그것은 전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것이 불가능한 시도였다는 사실을 설명하는데, 사실 저는 이 글을 쓸 때 이미 4장을 읽었기 때문에 거기서 소개한 '움벨트' 개념으로 위에 인용한 문장을 더 쉽게 이해한 듯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처한 환경에 입각해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죠. 다시 책으로 돌아가 저자의 설명을 보겠습니다.

시각은 사람이 선명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신경을 타고 들어오는 전기-화학 신호들을 해석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두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박문호 박사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썼던 <현상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구분하기>입니다. 아마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놓은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란 점을 처음 알았던 때입니다.


시력(視力)으로 보고 지력(智力)으로 녀기다

두 번째 생각은 최봉영 선생님께 배운 한국말속에 담긴 사상입니다. 2년 전에 <사람이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에 공부한 내용을 썼던 흔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보지 않습니다.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마주해야 보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가는 것 만을 봅니다. 이 책은 최봉영 선생님이 '보다'의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 근본적인 원인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다시 책에서 밑줄 친 내용을 봅니다.

핵심적인 사실 하나가 드러나 있다. 감각적인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때에만 의식적인 시각 경험이 발생한다는 것. <중략> 비록 시각이 객관적인 광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학습을 거쳐야 한다.

이쯤 되면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뇌가 하는 일이라 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비디오카메라의 데이터 스트림을 받아들여 맛이나 촉감 같은 다른 감각에 입력되는 정보로 바꾸는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지를 묻는 것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 질문의 답은 ‘그렇다'이다. 이제 곧 보게 되겠지만, 그 결과 또한 심오하다.

다음 장에서 이어질 내용을 소개하는 문장으로 보이지만, <인공지능 길들이기> 덕분에 멀티모달리티와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를 읽고 쓰는 독후감

1. 우리는 이 행성에서 가장 분주하고 밝게 빛나는 존재다

2. 자동으로 움직이는 뇌에서 선택의 주체는 누구인가?

3. 관념계 여행과 무의식에 밀항하는 자아

4. 정신세계의 일들은 대부분 의식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5.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생명현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6. 경험의 해체와 인간 관찰력의 한심함에 대하여

7. 시각이 세상을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널리 퍼진 착각

8. 우리는 실제 세상이 아니라 뇌가 보여주는 것을 인식한다

9.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44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44. 시각이 세상을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널리 퍼진 착각

145. 나는 나로 살아야 숨통이 트인다

146. 사랑은 우릴 어디론가 데려다줄 것이다

147. 우리는 실제 세상이 아니라 뇌가 보여주는 것을 인식한다

148.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 곧 나를 이야기한다

149. '왜'라는 질문 없이는 불가능한 지속 가능성

150. 준비가 아니라 나를 알고, 나를 믿고, 해 나가는 것

151.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

152. 확신이 없는 길을 가는 방법은 나 자신을 믿는 것

153. 생각을 하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

154. 북극의 빙산이 녹아 섬이 잠긴다는 거짓말

154. 군사정권의 유산과 강력한 검언유착을 이겨낸 K-민주주의

156. 편견이라는 미세먼지 그리고 제정신이라는 착각

157. 지구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158. 지구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159.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농경 사회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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