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은 Oct 12. 2021

봄이 오면

창작시



강가에 봄이 오면

한 마리 애벌레 되어

버드나무 연한 이파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그네를 타고 싶네

봄바람에 취하고 싶네

     

라일락 꽃향기

대기에 진동하면

한 마리 벌이 되어

꽃 속으로 날아가고 싶네

꽃가루 속에서 뒹굴뒹굴 구르다가

달콤한 꿀샘에서 목을 축이고

고운 꽃잎 이불 삼아

한숨 잠을 자고 싶네   

  

자작나무 숲속에 봄이 오면

한 마리 사슴벌레 되어

가장 젊은 자작나무 줄기에 조용히 귀를 대고

물관을 흐르는 세찬 소리를 듣고 싶네

뿌리 끝에서 이파리 끝까지 이어지는

나무의 혈관,

을 타고 흐르는 봄의 맥박,

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네   

  

겨우내 고이 잠든 호숫가에

은은한 봄 햇살 비추면

한 마리 물고기 되어

이리 저리로 헤엄치고 싶네

고요한 물속에서 까불고 싶네

어데 가지 못하는

물풀들 희롱하며

나풀나풀 지느러미로 날고 싶네     


지구에 봄이 오면

어떤 외로운 지구인이 되어

고요히 강가를 걷다가

버들잎 갉아먹는 애벌레를 사랑하겠네

라일락 꽃 사이로 꿀을 퍼 나르는 벌을 사랑하겠네

나무 수액을 빨아먹는 사슴벌레를 사랑하겠네

호수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사랑하겠네

나처럼 외로운 너도 사랑하겠네





커버 이미지 : Pixabay 

이전 05화 허락도 없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