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퍼붓는 날에
햇사레 복숭아를 사서
집으로 오는 길
관리사무소 앞 화분에
뽀얗게 뽀얗게
자몽꽃이 피었습니다
삼 년 전 어느 집이 이사 가면서
시들시들 자몽 화분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갔더랬지요
갑자기 노지로 나온 자몽나무는
햇살 받고 바람 쐬고
천둥에 깜짝 놀라며
어여쁜 꽃송이 몇 개
어영차 피어 올립니다
둥글고 향기로운 열매들이
쪼꼬맣게 달리고
자라고 자라
딴딴하고 달큼한 열매가 될 때까지
거기서 그렇게 위풍당당하거라
달걀을 사 오면서
밤산책을 하면서
나는 너에게
속삭이고 또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