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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바다 Feb 05. 2024

경주(慶州)  구석구석 (6)

계림과 첨성대

경주 관광 안내도 (경주 첨성대 6번)

   국립경주박물관 탐방하고 정문을 나오자 겨울해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갈길이 바빴다. 서둘러 월성으로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월성과 석빙고를 거쳐 바로 북쪽에 있는 계림과 첨성대를 보기 위해 달리다시피 이동했다.  

월성.성루.해자 / 월성 출입구 / 해자

   월성의 출입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턱이 낮은 곳으로 내려오니, 좌우측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물을 채운 해자가 보였다.


<주요 관람 코스> (아래 글 탐방 내용 : 굵은 선)

석굴암> 불국사> 분황사> 황룡사지> 월성(석빙고)>동궁과 안압지(월지)>경주 국립 박물관> 월성> 계림> 첨성대     

경주 계림

경주 계림(사적 제19호)

   경주 김 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들어져 있는 곳이다. 신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이다. 약 7,300㎡이며 느티나무·물푸레나무·싸리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시림이라고 하던 것을 김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이라고 불렀다.

계림 비각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4대 탈해왕(脫解王) 9년(65년) 3월 밤, 금성의 서쪽 시림 가운데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신하에게 살펴보게 했다. 신하 호공이 가보니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 금으로 된 조그마한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었다고 한다.

찬기파란가 비석 / 고목과 왕릉
왕릉 / 고목과 건물터 / 첨성대

   왕은 즉시 시림에 가서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그 아이에게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김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은 김 씨로 하였다. 이곳에는 1803년(순조 3년)에 세운 김알지 탄생에 대한 비가 남아 있다.


경주 황남동 대형 건물지

경주황남동 대형 건물지

   멀리 왕릉군이 보였다. 특이하게도 많은 왕릉들이 평지나 평야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석축만 덩그러니 남은 옛날 대형 건물터만 보였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던가?  1988년과 2006년 발굴 조사 결과 15기의 건물지를 확인하였다.

첨성대

첨성대

   마침내 드디어 경주의 심벌, 첨성대에 도착하였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2~47년) 때 건립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 준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 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 9m이다.

첨성대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첨성대  좌측하늘에 달이 걸렸다

   첨성대를 이루는 돌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진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첨성대의 모양은 하늘과 땅을 형상화했다. 첨성대를 만든 365개 내외의 돌은 1년의 날수를 상징하고, 27단의 돌단은 첨성대를 지은 27대 선덕여왕을, 꼭대기 정자석까지 합치면 29단과 30단이 되는 것은 음력 한 달의 날수를 상징한다.


   관측자가 드나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위쪽 12단과 아래쪽 12단은 1년 12달, 24 절기를 표시한다.


   천문학은 별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정하였으므로 농업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이 고대 국가에서 중요시되었으므로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왕릉/ 첨성대 주변

   이일대가 동부 사적지대(사적 제161호)로 지정되어 있다. 범위는 동서로는 동궁과 월지부터 교동까지, 남북은 계림 북쪽에서 고분공원 앞 첨성로가 있는 곳까지다. 즉, 월성, 동국과 월지, 첨성대, 계림을 하나의 사적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들 유적 사이사이에서도 무수히 많은 지하유적과 유물이 계속 출토되고 있다. 이는 신라 도성의 중심지역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특히 첨성대와 월성 사이의 넓은 들판에서 연을 날리는 부모와 자식 간 혹은 연인끼리의 친목 도모 혹은 사랑 확인하는 연 날리는 장면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연을 날려 외부와 소통하던 일화가 떠올랐다.

포석정 방향 / 세계유산 경주 유적지

   포석정을 탐방할 예정이었으나, 안내창구에 문의 결과 이미 관람종료를 하였다는 답을 들었다. 아쉽지만 다음기회로 미루고, 대구행 버스를 타기 위해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급히 향했다. 군데군데 거대한 왕릉을 보면서 신라 천년 고도(新羅 千年 古都) 경주(慶州)를 떠났다. 나의 버킷리스트 하나가 마무리되었다. 고맙다! 나의 꿈이었던 경주! 안녕!

경주시 계림 첨성대 팸플릿


<참고 자료>

-. 경주 계림 첨성대 팸플릿

-. 경주시 홈페이지


저의 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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