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시계가 울리자눈이 자연스럽게 떠진다. 온몸이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 찌뿌듯했다.어제는나이로비에서 40분쯤 떨어진 니므로라는 곳에서 민들레를 캤다. 몇 주전, 가깝게 지내는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민들레 김치가 먹고 싶네요. 함께 나물 캐러 가요?”
나는 흔쾌히 “Yes”라고 했다. 그녀는 워낙 쌉쌀한 음식을좋아할 뿐 아니라 나이로비를 벗어나고싶은 듯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빨간 목장갑과 작은 칼과 커다란 비닐봉지를 챙겨 들었다. 우리는 고도 2,000미터가 되는 홍차밭이 유명한 곳으로가기로 한 것이다. 차가앞으로 나아 갈수록 구름이 두둥실 눈앞으로 다가왔다.
모자를 눌러쓰고 들판을 헤집고 다니는 동양인 여자들을 현지인은 신기한 듯 쳐다는 봤지만 무엇을 하냐고 묻지는 않았다. 처음 간 곳에는 민들레가 그리 많지 않아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장소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우기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렇게도 많았던 민들레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그늘진 곳에 노란 민들레꽃이 보였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서 물어 왔다. 왜 풀을 뜯냐고, 나는 웃으면서약으로사용할 것이라말했다.
밤새 찬물에 담가 놓았던 민들레를깨끗이 씻어서 다시소금물에 푹 담갔다. 쓴 물을 빼기 위한 작업이다.
미처 시작도 못한 영어 숙제를 위해 스마트폰을 켰다. 노트에 연필로 사각사각 글씨를적고틀린 것은 지우개로 지우며 문장을 적어 본다. 노트 가운데로 몰린 까만 지우개 가루가 보여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급하게 휘갈겨 쓴 영어 글씨가 지저분했지만마음은 뿌듯했다.
볼트 택시의 창문 너머로 푸른 하늘이 올려다 보였다. 아, 감사하고 좋은 날이다.
공부할 내용은 ‘Kim’s Convenience’의 Name in red, means yous a dead이다.
오전 11시, 우리는 한쪽 벽이 반쯤이나 뚫린 작은 카페에 모였다. J와 Y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스터들은 언제 봐도 좋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술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온다. 늘 어느 모임에서든지 전야 전은 있다. 주제 없이도 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하하호호'거릴 수 있지만 각자의노트를 폈다.
내용은 한 캐나다 여자분이 김씨네 가게로 탄원서 한 장을 갖고 온다. 그녀가 사인을 위해서 김 씨에게 내민 펜은 빨간색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빨간색 볼펜은 중요한 날짜를 표시하거나 오타를 수정할 때 사용한다. 특별히 중요한 서류에 자신의 이름을 빨간 펜으로 사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만약 사인을 하더라도 실수를 하는 경우이다.
김 씨는 한국인이 빨간색으로 이름을 쓸 경우에는 죽은 사람을 표시할 때뿐이라며 단지, 미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여자로부터 건네받은 빨간펜을 실수를 한 듯 부러트리곤 자신의 검은색 펜으로 사인을 한다. 김 씨는어렸을 때부터 듣고 보고 자란 한국문화를 쉽사리 저버리지 못한 것이다.나 또한 크리스천이지만 한 번도 빨간색으로 사인을 해 본 적은 없다.
몸은 피곤했지만 2시간 반 가량 영어공부를 하는 동안 금방 시간이 흘렀다. 치킨 후레이크가 들어간 잘 익은 아보카도 샐러드와 양배추가 들어간 스프링롤,치킨 파니니와 카푸치노를 먹고 마시며그렇게 공부가 끝났다.
시스터들과의 영어공부가언젠가는 종료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날이 언제가 될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이 시간을 감사하며 즐기기로 했다.
공책 여백에 새롭게 배운 문장을 적어 본다. 노트가 바람에 팔랑팔랑 거린다.
다음시스터들과의 만남 때는 민들레로 맛나게 김치를 담가서 J와 Y가 맛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또한 내가 그녀들을 위한 소소한기쁨의행위이다.
'It's my pleasure.'
*배운 단어 : petition 탄원서, I hadn’t do that ~한 적이 없다, superstition 미신, so silly 엉뚱한 행동, as far as I am concended 내가 아는 한 (고집, 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