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 Feb 12. 2022

마지막 단계

시 넷.

깊은 바다에 함께 침전하는 일:

알아야 할 것이 뭔가요?

숨을 깊게 쉬어야 한다는 거예요.

바닷속에서요?

네.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데 나의 발 옆 절벽이 현실이 된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걱정 마세요, 꽤 성숙시킨 기능이라 바닷속에서 숨 쉬는 일은 마치 꿈속에서처럼 자연스러울 거예요. 그래도 그 행위 자체가 익숙하지 않으니 처음에는 기억을 해야 하는 거예요. "숨을 들이마시자, 숨을 내쉬자."
이렇게, 익숙해질 때까지.

나는 어리둥절하다.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귀 뒤를 만져보세요.

/아니, 이게 언제 생겼지?/

나도 모르는 새 없던 신체부위가 자라난 걸 그제야 알았다.

이게 뭐죠?

나의 놀란 눈에 이번엔 그녀가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당신은 한 번도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나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새로운 기관이 하나씩 생겨요. 저와의 사랑은 바닷속으로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귀 뒤 아가미가 생겨 인두로 연결되는 거예요.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크게 눈에 띄지 않으니 다행이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날개가 돋아나거나 발이 길어지면서 뒤꿈치가 뜨는 경우도 있어요.

아, 그럼... 다행이네요.

우리 둘 중 하나가 그만 사랑하게 되면 저절로 사라질 거고, 그럼에도 뭍에 오르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건 원치 않는다.
나를 안심시키는 그녀의 말이 능숙하다. 나 이전 다른 사람들 귀 뒤에 생겼을 아가미들을 상상하다 속이 약간 거북해졌다.

자, 준비는 되었어요. 이제 뛰어내릴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먼저 가시지 않고요?

그럼요, 당신이 용기를 내줄 때까지 기다려야죠. 같이 뛰어내리려고요.

잠수가 시작되는 거네요.

네, 바다살이가 시작되는 거죠.

그녀가 내 손을 더욱 꼭 잡는다.
그녀는 마치 중력 같다.
나를 견고하게 붙잡는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셔 참았다.
아차 싶은 표정으로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도 참았던 숨이 새어 나오고

그렇게 우리는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진다.



이전 03화 침묵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