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집처럼 이 집도 분명히 개인이 살고 있는 공간이지만 묘하게 공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박스집에 살 때의 일이다. 그땐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교회 건물 안(정확히는 교회 옥상 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줄만 알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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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문을 열고 나왔는데 옥상에 누군가가 의자를 놓고 우리 집을 향해 우두커니 앉아 계신 적이 있다. 정말이지 기절 초풍하는 줄 알았다. 기도를 하시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계시는 것이다. 왜 그러고 계시는 건지 짐작을 하려 해도 이해가 안 됐다. 기도는 본당이나 따로 마련된 기도실에서 하면 되실 텐데. 왜 여기에 계시느냐고 물어도 요즘은 사방에 가는 곳마다 씨씨티비가 없는 곳이 없다는 둥 뚱딴지같은 말씀만 하시며 내려가시래도 꿈쩍을 안 하신다. 게다가 그분이 우리 교회 성도님도 아니었다는 점이 정말 쌔한 포인트. 왜 남의 교회 건물, 남의 집 앞에서 그러고 계신 건지. 경찰에 신고라도 해서 사적 영역에서 쫓아내고 싶은데, 그런 방법은 은혜롭지가 않으니 그저 본인이 내키실 때까지 그러고 있도록 두는 수밖에.옥상에서 동네를 내려다보는 자리도 아니고 우리 집 현관문을 향해 자리 잡은 그분은 몇 시간 동안 그렇게 옥색 페인트가 발라진 컨테이너 박스를 묵상하며 앉아계시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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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행사가 있어 여러 명이 씻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우리 집 화장실을 오픈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어차피 교회에서 제공한 집이니, 필요하면 언제든 집 문을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이신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난 뒷정리(배수구 머리카락, 그날이신 분들의 흔적 지우기, 수건 빨래)는 당연히 내가. 깨트리고서도 미안하다 소리 한마디 않고 가신 양치컵 교체도 내 사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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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가동하는 에어컨은 용량이 크기 때문에 옥상으로 연결된 실외기에서도 상상초월 소리와 열기가 나온다. 그 소음과 열기는 이미 하루종일 땡볕을 잔뜩 쬐어 한껏 열을 머금고 있는 우리 박스집으로 고스란히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집 가정용 에어컨 실외기가 옥상 한구석에서 달달달 돌아가고 있으면 옥상에 올라오신 분들이 사택에서 에어컨을 너무 돌린다며 걱정 (정확히는 교회에 청구될 전기세 걱정)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교회 안에 사는 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그다음 사택은 교회 밖에 살게 되었음에도 큰 차이점은 없었다. 이번엔 시골이어서 그런 거겠지 하고 생각을 했다.
A
젖먹이 아기를 키우느라 밤낮없이 계속되는 수유로 정신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아무 때나 열어 헤치기 편한 차림으로 집에 있는데,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보니 곧 명절이 다가온다고 '직접' 선물을 가지고 오신 거였다.
아.... 사무실로 주시면 목사님들이 잘 챙기실 건데_
내 얼굴도장을 찍고 전해주고 싶으셨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슬픈 점은 나는 사실 사람들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같은 반 친구 이름도 방학이 지나면 일부는 까먹을 정도로 까마귀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거나 예배 때 앞에 많이 서시는 분이 아닌 이상 누가 주신 선물인지 더 알 수 없게 되어버리기도 일쑤였다.
날짜가 가는지 마는지, 명절이 오는지 헤아릴 정신이 없었던 나는 첫 방문 이후로 한 시간 두 시간 간격으로 온종일 계속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기를 재울만하면 초인종이 울렸고, 아기에게 젖을 주고 있는데 또 초인종이 울려댔다. (나는 한번 사출이 시작되면 소방호스처럼 쏟아지는 젖이었다.. 중간에 아기 입을 떼면 멈추는 게 아니고 그냥 계속 쏟아지고 있다구요_ 맙소사)
아니 명절 아직 안 왔고, 주일도 한번 남았는데!!!! 주일날 교회에서 주시면 안됐으까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찍 선물을 주시는 분도 있는 반면, 명절은 이미 토요일이었고 주일 예배 마치고 우리도 뒤늦게 부랴부랴 집으로 출발했는데 "목사님~ 가셨슈? 내가 묵을 쒀 왔는디~"하고 집 앞에서 전화를 주시는 권사님. 우린 차를 돌려야 했다.
B
알려진(?) 집이다 보니 불시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참 많았다. 좋은 마음으로 오신 걸 텐데, 직장을 관두고 아직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수시로 속상하던 그때의 나는 성도님들의 그런 행동이 "사모인 네가 교회랑 집 말고 딱히 갈 데가 어디 있냐? 그러니 아무 때나 약속 없이 찾아가도 너는 내 부름에 응해야지"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정말 나빴다.
현관문은 왜 때문에 옛날 할머니 고방 유리 같은 걸로 되어 있는 건지, 집안에 불이 켜졌나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지가 실루엣이 다 비치는 문이었다. 현관문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참으로 허술하기 그지없는 문이었다.
게다가 선임사모님은 빛나는 사우론의 눈으로 내 차가 없어지면 사모님 어디 갔다 왔어?, 밤에 거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어제 밤늦게까지 집에 불 켜져 있던데, 뭐 했어?물어보시고. 성도들은 아무 때나 초인종을 눌러대고. 환장의 콜라보였다.
하루가 가는지 마는지 알 수가 없었던 먹통 박스집을 벗어나 사방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와 잠시간 행복했던 나는 그 많은 창문에 암막커튼을 달게 된다.
C
집에 만약 보일러 등 문제가 생기면 시설관리 하시는 장로님께 말씀을 드려서 수리과정을 진행시켜야 하는데, 내도록 반응이 없다가 어느 날 불현듯 "사모님 지금 갑니다!" 하고 오신다. 그 날과 시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처럼 말이지.
새벽기도 마치자마자 오시기도 하고, 외출 중일 때 오시기라도 하면 현관문 비번을 알려드려야 한다.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모르시는 우리 집 비밀번호를 말이다.
한사코 자긴 괜찮다 하시니 어쪄~ 내가 안 괜찮은 건 아예 논외이니 말이다.
주소지가 계속 달라지지만 이토록 한결같이 신비로운 집에 살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황당한 일도 많았다.
앞으로는 또 어디에 살게 될까. 그곳은 또 어떤 문화를 가진 곳일까. 같은 한국 안에서도 동네마다 교회마다 엄청난 문화의 차이가 있다.
당신이랑은 오지 산간 그 어디에서도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했는데 난 이제 정말 어떤 집에서도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