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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Feb 02. 2024

비밀의 숲에서 만나 사랑을 했네

많은 사모님들이 모인 곳에 가면 두 가지 놀라움이 든다.

첫 번째는 '역시 연륜이 깊으신 사모님들이 하시는 기도와 찬양은 특별한 에너지가 있구나. 이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 힘에 압도되어 눈물이 절로 나온다.'

두 번째는 '아니, 저분이 사모님이시라고?' 하는 의아함이다.


척 봐도 고급스러운 태도와 온화한 얼굴표정이신 분과 그냥 생활에 찌든 신경질적인 아줌마 같은 분으로 극명하게 나뉘는 것 같다.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시는 거 맞나 싶은 표정을 짓고 계신 분 말이다.


그런 자리를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나중에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생각하게 된다. 사모님들의 얼굴과 아우라가 그토록 다른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어느 날 예배 중이었다. 이 찬양을 부르는데, 내 속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쳐댔다.

즐겁지 않다,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아!!!


맑눈광 본심이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계속 웃으며 손뼉 치며 찬양을 부르고 예배를 끝까지 드렸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오늘 내가 드린 예배는 쓰레기 같았다. 하나님께서 전혀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았고, 오히려 슬프실 것 같았다.


나는 왜 기쁘지 않았을까?


청년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담임목사님도 청년부목사님도, 모두 은혜로움 그 자체였다. 매 예배가 감사가 넘쳤고 교제에는 사랑이 있었다. 온 주말을 바쳐 내 시간과 재능을 드리는 것이 영광이요 기쁨이었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었다.

선교단체에서 하는 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서 2년을 머물며 훈련과 공부를 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리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찐사랑에 빠졌고, 사모라는 길은 단 한 번 상상도 해본 적 없고 영 자신이 없었지만 오빠가 다 책임진다는 30년 후에나 지킬 수 있을까 말까 한 달콤한 말을 믿었고 그렇게 사모의 길에 덜컥 발을 들이고 말았다.(그때 결혼을 선택한 나 자신, 돔황쳐~ 너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ㅎㅎ)


그리고 목사님들의 여러 얼굴을 보는 삶으로 쑤욱 끌려들어 온 나는,

장로님들 눈치를 보시느라 할 말도 못 하고 부교역자들을 보호해주시지 않는 목사님

앞에서는 공동체의 하나 됨을 강력히 외치시지만 뒤에서는 누구보다 편을 가르고 내 사람 니사람을 구분하는 목사님

성령의 역사하심을 강조하시지만 실은 자기 계획이 다 있으신 목사님

등을 겪으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도저히 적응이 안 됐고, 적응하고 싶지도 않았다.


앞에서 보여주시는 표정과 뒤에서 하시는 말씀이 다른 것 - 이런 것이 목사의 삶이고, 사모의 삶이라면 살고 싶지 않았다.

나만 어디 다른 교회로라도 몰래 옮기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주중에 목회사무실에서 보여주시는 다른 얼굴을 아는데 성도들 앞에서는 이렇게 행동하시는 그런 경험이 누적될수록 가슴속에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갑갑함을, 그 무렵의 나는 매 순간 느끼며 지냈던 것 같다. 날마다 더 깊은 심연으로 한없이 침잠하는 기분이었다.



애달픈 사랑... 내 이야기?!


그 무렵 우연히 <업사이드 다운>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는데, 얼마나 울면서 봤는지 모른다. 다음은 그때 영화를 다 본 후 메모장에 기록했던 글이다.


우리는 같은 하늘(예수님을 믿는 믿음, 오빠와 나 신앙의 색깔)을 바라보고 있었고
하늘 어딘가, 우리의 세계가 맞닿은 비밀의 숲에서 마침내 만나 사랑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각자를 끌어당기는 중력이 다르니
당신이 이쪽 나라로 오려면
결국 몸에 불이 붙고 말 거야....


영화 속 두 남녀주인공이 꼭 남편과 나 같이 느껴졌다. 너무나 애틋하고 슬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주변에 그렇게 남편 목사님의 세계에 따라가 보려다 중력이 맞지 않아서 실제로 불이 붙어버린 사모님들을 보기도 했다. 사모로 사는 삶이 너무나 무리가 되어서 몸에 병이 온 분도, 정신에 무리가 온 분도 계셨다.


뭐든지 다 좋아 보이던 신혼을 지나고, 질풍노도의 권태기를 지나 우리는 이제 진정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조율이 되어가고 있지만 아마 이 길은 사랑만으로는 함께 가기 어려운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목사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매 예배 때마다 담임목사님께 쪼르르 달려가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해 달라고 조르던 어린이였다고,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던 영적인 어린이였다고 했다. 그에게서 평생의 꿈을 빼앗을 순 없었다. 그가 꿈을 버리고 나를 선택한다면 그또한 기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리를 부러뜨려 새장에 넣어놓은 새나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


당신 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나는 그 길에 맞지가 않으니 우리는 이쯤에서 이만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당신이 꼭 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겠다고.. 우리 각자 갈 길을 가면서 아이 부모로서의 역할만 함께 하자고... 삼켜도 미처 다 삼키지 못한 울음을 끅끅 누르며 말했다.


남편은 그것은 우선순위가 뒤바뀐 말이라고 했지만_

남편의 꿈을 접게 하면서까지 쪽으로 당길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_


연애할 때 남편이 자기는 선교사로도 나갔다 오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을 때, "응 오빠 다녀와. 내가 한국에서 아기들 잘 키우며 씩씩하게 있을게. 나는 보내는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어."

이와 같은 단호박으로 대답했던 나였다.

그 후로 선교사 이야기는 자취를 감추고 쏙 들어갔는데, 또 남편을 잡아당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나도 너무 소중했다.

내가 고민 끝에 생각한 답은 이혼이었고 남편은 지금 이 상황에서 이혼이 우리의 종착지가 되어선 안 된다며 우리가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런 바보 같은 소리 말라더니,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역지를 옮겼다.



그리고 그만큼 힘든 곳은 다시없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또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실망하고 상처받지 않는 법을 오늘계속 배워가는 중이다.



#이 길로 나를 부르신 주님

#넉넉히 감당할 어깨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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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꾀병 같기도.. 공황발작 같기도.. 내 몸 정말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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