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A와 B의 눈 앞에 케이크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수긍할 수 있도록 이 케이크를 둘로 나누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A: A가 가능한 한 똑 같은 크기로 잘라서 B에게 먼저 선택하도록 한다.
여러분은 이 퀴즈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요? 이 질문의 핵심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혹시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나눌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그래서 어쩌면 절반으로 나누기 위해서는 어디에 칼을 대는 것이 좋을지 자로 치수를 제거나, 케이크에 얹어진 딸기의 수량과 크기, 크림의 양을 생각하거나, 또는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둘로 자를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케이크를 이등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로, 똑 같은 크기로 나누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퀴즈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이등분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수긍할 수 있도록’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 케이크가 똑 같은 크기로 이등분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이죠.
문제는 ‘양쪽 모두 기분 좋게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것입니다.
이제 질문의 핵심이 이해되었나요? 그렇다면 답을 생각해볼게요.
옳은 답은 ‘A가 가능한 한 똑 같은 크기로 잘라서 B에게 먼저 선택하도록 한다’입니다.
A는 자신이 직접 둘로 잘랐으므로, 어느 쪽이든 수긍할 수 있습니다.
B역시 자신에게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으니 당연히 수긍할 것입니다. 이처럼 ‘어떻게 하면 똑같이 이 등분할 수 있을까’를 문제로 생각한다면 해결이 어렵지만, ‘어떻게 하면 양쪽 모두 수긍할 수 있을까’를 문제로 생각한다면 해결책을 찾기가 매우 쉬울 수 있습니다.
사람과 람 사이에 오고 가는 말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김과장 : “ 이대리, 이번 건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 한거야?
이대리 : “ A업체는 원래 억지를 부리는 곳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김과장 : “ 이봐, 그런 문제가 아니지. 최대한 설득하려는 노력을 했어야지”이대리 : “ 제가 봤을 때는 전체적으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주장만을 반복할 뿐입니다.
원래 공유될 이야기는 “ 함께 노력해서 이번 일을 잘 해결해보자”였을 텐데 서로의 입장을 고수한 채, 문제로서만 바라보네요.
만약, 김과장이 “ 먼저 일 처리 하느라 고생했네, A업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대안을 없나?”라고 했다면 이대리도 다른 대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하루 동안 열심히 노력을 했는데도 성과가 좋지 않거나 행복하지 않다면, 가장 먼저 내가 평소에 어떤 말들을 습관적으로 내뱉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말 습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이번 일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거야”
“ 나는 스펙이 좋지 않아서 인정 받지 못한거야”
“ 나는 부모님이 이렇게 키워서 실패자가 될 수 없어”
“ 나는 돈이 없어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어"
“나는 ~해서 , ~할 수 밖에 없다” 라는 사고 방식에 대해 심리학자 아들러는 “원인론”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원인에 초점을 두는 말 “ 때문이야”
“00 때문에 [원인] 때문에 이렇게 된거야 [결과]
“00해서 [원인]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 [결과]
원인만 찾아다니는 부정적인 말을 습관적으로 하면 “내가 못하는 이유”를 만들어 버리는데 초점을 둘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말 습관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죠.
그렇다면, 우리가 원인에 집중하는 말을 버리고 목표에 집중하는 말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목표에 초점을 두는 말 “ 어떻게 하면 될까?”
“ 어떻게 하면[방법]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까? [목표]
“ 내가 원하는 걸 이루려면 [목표] 어떻게 해야 될까? [방법]
“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말은 나를 해결사로 만들어, 부정적인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죠. 아들러의 심리학에서 이를 목적론이라 이야기 하며,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을 합니다.
~ 때문이야 [ WHY ] VS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HOW]
나를 혹은 누군가를 탓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목표에 집중해서 말하면 상황을 해결하는 데 집중할 수 있습니다.
“ 다 저사람 때문이야!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
이 문장을 보면 어떤 가요? 내 기분, 내 상황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휘둘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내 인생의 주도권을 “다른 사람”이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아래 문장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될까?”
말 한마디 바꾸었을 뿐인데,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적극적인 태도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남이 아닌 내가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흔히 단정 짓는 “~해서 ~할 수 밖에 없다”라고 단정 짓는 것은 잘못된 인과관계일 때가 많습니다.
나를 실패자로, 무능력자로 만드는 언어가 아닌,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말로 나를 해결사로 만드는 언어로 바꿔서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