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사기 出寫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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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든 여러 가지 생각은 흥미롭고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지하철에서는 핸드폰을 열지 않고 그냥 멍하게 있는 것이 좋다. 금시계와 중절모. 단정한 줄무늬 양복차림에 단장(短杖)을 든 어르신에게 자리를 내드렸다. 노인의 양복바지 오금 쪽이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양복 천이 두꺼운 탓이리라. 아니면 어디에서 오랜 시간 쪼그려 앉아 계셨거나.
몇 정거장을 지나면서 가방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무거운 필름카메라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가방 보다 더 거추장스러운 것은 삼각대였다. 20년이나 된 이놈의 삼각대는 무게가 만만찮아서 들고 있기에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지하철에서 세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삼각대 다리를 뽑고 벌리지는 않은 상태에서 지팡이처럼 썼다. 그러다가 왼손은 지하철 세로 막대를 잡고, 삼각대 지팡이를 덮은 오른 손등에 턱을 올려보았다. 그것이 최적의 자세였다.
아주 편했다.
■ 2024.10.9 아침나절
■ 카메라 : ILCE-7M3
■ 렌즈 : konica HEXANON 50mm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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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삼각대
- 헥사논 50mm f1.7 렌즈의 알듯 모를듯한 색 역시도 그대로 둔다.
- 수동렌즈답게 조작을 못해서 초점이 나간 것들도 그대로 둔다.
- 잘 찍고 못 찍고 따지지 않고, 기억해 두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도 그대로 둔다.
#1. 문래역 7번 출구를 나와서 쭉 올라가면 이곳을 만날 수 있다. 안내판은 '문래창작촌'이고 이곳의 명칭이다. 바로 여기에 도착하기 위해 고초를 겪었다. 하필 이곳 위치를 잘못 설명해 놓은 글을 만나서 뺑뺑이를 돌고 돌다가 굶주림과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마음을 내려놓을 뻔했다.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와 홈플러스 영등포점을 끼고 150여 미터...'라는 어느 블로그의 설명을 따라가다가 그랬다.
영등포구청 홈페이지 설명에 의하면 '문래동 文來洞'은 방적 기계 '물레'에서 비롯된 말이다. 물레를 가리키는 한자가 있긴 한데, 그냥 소리만 가차(빌려 옴)했나 보다. '물레동'도 좋고, '문래동'도 좋다.
#2. 폐철로 만든 마상.
영화에 등장한, 이것저것 '생명을 가진' 닮은 꼴들이 떠올랐다. 이곳을 찾느라 지치지만 않았다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을 것이다. 희미해진 글자나 색 바랜 부착물 등등...
#3. 이곳은 60년 역사의 철공단지가 있던 곳이라 한다. 최근, 이곳이 서울 외곽으로 통이전 될 것이라는 기사가 검색된다. 잠시 돌아본 터라 구석구석 살피지는 못했으나, 과연 철공소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창작촌'이라는 말에 걸맞은 예술인들의 일터로 보이는 곳도 보지 못했다.. 지치지만 않았어도...)
철공단지가 떠난 자리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 신산업 스마트밸리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어쩌면 '지나가니 추억이' 되더라는 세대의 전유일지도 모르겠다.
회자정리요 거자필반. 만난 것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은 인생무상(人生無常 - 인생에 한결같은 것은 없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무상하니 집착하지 마라.' 人生에 만남과 이별은 끝이 아님을, 그러므로 집착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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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은 틀림없는 대로(大路)이긴 하지만, 그리 희망적으로 읽히지 않는다.
#4. 용접 안면보호기의 작게 뚫린 창으로 문래동 창작촌 안내판을 돌아보았다.
#5. 왼쪽으로 읽으면 '채윤희', 오른쪽으로 읽으면 '희윤채' 블로그에 이 주점에 대한 것을 찾을 수가 있다. 채윤희로 읽는 것이 맞더라. 전체의 뜻은 모르겠다. '채'는 나라 이름, 또는 성씨로 쓰이는 한자이다. '윤'은 윤기. 즉 물기를 머금은 생기이고 '희'는 웃음소리이다.
저 오목한 공간에 두세 개의 탁자를 두고 흡연 가능 장소로 만들면..... 좋겠다.
#6. 골목 안쪽을 들여다봤다. 문래동에는 이런 골목이 많을 것 같다. 여기에서 삼각대를 세우고 흑백필름이 든 F100 + 70-300을 올렸다. 타이머로 셔터를 누르고 렌즈의 초점 지점으로 갔다. 내 눈의 초점은 허허로운 하늘에 얽힌 전선에 맞추었다. 잠시 뒤 날카롭게 셔터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필름으로 찍은 유일한 컷이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는 집어넣었다. 두 대의 카메라를 돌리기엔, 심신이 피로했고 다다르지 못할 촬영 욕심에 나긋나긋한 이 아침나절을 부질없이 소모할 수가 없어서였다.
다행히 필름 카메라는 다른 컷에서 소품으로 쓸 수 있었다.
이 골목에 젊은이들이 북적대는 것을 상상해 봤다.
좋다.
#7. 술병.
#8. '그리고 문래'
#9. '목화원'
#10. 이 컷이 없었으면, 이날은 헛된 출사였을 것이다.
허허로운 프레임에 총총히 들어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0. 삼각대를 세우고 찍었다.
#11. 삼각대를 세우고 찍었다. 흑백으로 바꿔보았다. 통일성이 떨어졌지만, 상관없다.
몇몇 젊은 친구들에게 흑백으로 바꾼 이 사진을 보여줬더니, 딱 한 명이 '낭만'이라고 답했다.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 망상이나 몽상. 둘 중 하나에 해당되는 상태라고 추측해 본다.
이왕이면 몽상이 좋겠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12. 이곳에서도 삼각대를 세우고 출연하고 싶었는데, 못 찍었다. 옆에 일찍 철공소 여는 분이 있어서 눈치 보였기 때문이다. 나의 고질 중 하나는 조급증이다. 모처럼의 출사에 빨리 찍고 갈려는 조급증이라니.
그 이유는 복합적인데, 다른 사람이 싫어하지 않을까, 폐가 되면 어떡하냐.... 는 등의 완벽주의 성향에 소심, 약한 체력...
멍청하긴!
한 번이라도 사진에 완벽을 추구해 보라!!!
이것은 소요유가 나 같은 자에게 얼마나 다다르기 어려운 경지임을 보여준다.
'소요유 逍遙遊'는 역시 장자(莊子. 기원전 369?-기원전 286?)의 「소요유 逍遙遊 」에서 갖고 왔다.
철학으로 여~~~~ 러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나에겐 그저 잠시 바람 쐬러 가는 것이다. 이천 년 전의 장자가 얼마나 정신의 절. 대. 적. 자유를 누렸는지는 알 수 없고, 21세기에 발 딛고 있는 내가 정신적 자유를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다. 소요유에는 소극적이긴 하지만 자족의 기쁨과 자기 삶에 대한 애착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일 따름이다.
잠시 바람 쐬는 것. 잠시의 소요유. 글쎄 참새가 날 수 있을 정도의 높이라면 다다를 수 있을지도.
참새의 몽상이라, 역시 좋다.
#13. 이 녀석을 3장 찍었다. 그중에 이 컷을 선택했다. 꼬리가 반만 남았더라.
당연히 있어야 할 녀석인데 반가웠다.
#13.
#14. 여기에서 마무리.
나긋나긋하고 아련한,
여름의 미련이 남은 듯한 가을날의 아침. 이렇게 보냈다.
가을이 깊어지고 이때의 아련함은 365일 뒤에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