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시작 전, 공연단 구호의 외침
새해를 맞이하기 앞선 연말의 끝은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안온했던 자리에서 빛났던 건 화창 공연단이 나누는 대화뿐이었다. 인연은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연출 선배는 오픈 채팅방으로 한 명씩 초대했고, 이내 공연단을 꾸렸다. (기획팀의 단톡방은 존재하고 있다.) 내가 기획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건, 기획의 중요성을 알게 된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지 편집국장을 맡게 되면서 원고를 작성하는 일보다 기획서를 작성하는 일이 먼저다. 최소한의 목차, 아이템기사, 주제, 취재 (인터뷰, 설문조사 중 하나 거나,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의 접근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가 있어야 하고 세부적인 설명을 포함한다. 필수. 기획서를 들고 가서 하고 싶은 바를 전달하는 국장의 설득력과 의사소통능력이 있어야 한다. 속된 말로 말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의 기획이 중요하다. 책의 기획을 배우려고 강의와 강연을 보기 위해 뛰어다녔으니 연극의 기획이 궁금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기획팀에 들어오고 나서 가장 먼저 동방에 앉아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기획 총무 선배가 사서 온 빵을 먹으며 크림과 당분이 들어간 입과 눈에는 인수인계의 시간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기획 자체는 달콤한 일이 아니었는데 기획의 결과물을 보면 어깨가 올라간다. 어디까지 올라가야 할지 모르는 터라 담이 걸리거나 어깨가 뭉쳐 왼손은 아래가 아닌 항상 등으로 향하게 된다.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마음으로 학우들을 대하고 이 카드뉴스를 대하게 되는 날이 있었다. 기획장 선배와 만나 카드뉴스의 디자인에 대해 논의했다. 교지 제작 과정에서도 노란색과 파란색 배경으로 디자인 했던 나는 예쁘다고 말하며 빙구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시디과 기획부장에게 "디자인은 제가 할게요."라고 들었으니 디자인의 망손은 여기 있더라. 하늘 아래 같은 립스틱 색은 없다고 하던가? 나에게는 온통 색깔 맞추기 시험이었고 색이라곤 크레파스 30색에 있는 30색의 구별 정도였다. 여기서는 높은 시력의 위엄도 없다.
"선배 시클라멘 꽃다발일까요? 화분일까요?"
"음... 잠깐만. 이게 더 예쁘다. 이걸로 한 번 해볼까?"
아이콘과 일러스트를 찾아보며 대조하다가 시클라멘의 꽃말을 보았다가, 이것저것 도전해 보는 비전공자였다. 대뜸 건축학도를 좋아하다 건축을 배웠더니 머리를 짚었다는 나의 이야기가 떠올라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으나 이내 자취를 감췄다.
기획의 꽃은 무엇일까.
회의
어떤 단어의 무엇. 무엇이 꽃일 때는 그 단어의 중심적인 일로 표현되는데 기획의 80%는 회의에서 회의로 끝난다. 홍보 자료 제작, 회식 장소, 공연티, 공연단 장들의 회의에 잠시 참여해 보는 일도 적지 않아 있다. 회의를 꾸려야 하는 위치에 있다 서기가 되는 날, 중고등학생 때 서기를 해보고 싶었던 장면이 주마등으로 지나갔다. 나도 OB가 된다면 언젠가 받을 카톡과 우편물을 OB선배님들에게 보낸다. 노고와 힘듦을 알아주는 선배님의 꾹꾹 담은 활자를 볼 때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보면 나도 어른이지만 스물다섯이 주는 숫자의 나이가 아닌 진짜 어른.
* ( 진짜 어른이라 표기하면 교수님께서 "가짜 어른도 있냐?"라고 물어볼 기세이지만 문득 무어라 백과사전에도 찾아볼 수 없는 모호함이 텍스트로 표현하지 못하고 머릿속과 마음에만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
글을 쓰는 걸 좋아했던 나에게 공연단 인터뷰 질문지를 맡게 된 일에 대해 또다시 어깨가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다. 왼손이 등이 아닌 오른쪽 손목을 잡고 휙- 휙 돌리고 있었다. 인터뷰는 누구를 찾아보고 알아보는 계기가 되니 인터뷰이와 벽을 세운 세상이 아니다. 그저 숨과 고민이 채워진 가까움만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었다.
공연단과 관객이 멀어지다 벽이 허물어졌을 때 연극에서 보여주고 싶은 연출과 의도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되지 않을까. 모호했던 활자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표현할 수 있는 마음과 장면 사이 쿵쾅 거리는 심장박동은 누굴 속일 수 없는 환호가 아니었을까. 그의 대답은 오로지 관객이 하고, 환호를 확장시키거나 묻는 일은 공연단이 할 것이다.
트라우마 유발이 있었던 연극 <화창>은 나에게 엉성한 위로를 줬다. 그래서 트라우마 극복하는 사람이 있다면 살아줘서 고맙다고,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을 아낌없이 전한다. 물론 나부터, 그리고 당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