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유난히 좋아했던 과목은 '문학'이다. 문학 선생님은 긴 막대기 하나를 책사이에 끼고 들어와 아이들에게 묻곤 했다. "오늘은 뭘 배울래?" 다소 황당한 질문에 아이들은 "소설이요", "시요.", "수필이요."하며 대답했다. 그 선생님은 시를 배우고 싶다는 나의 말에 책을 펴고 아래의 시 한 편을 읽었다.
복종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문학 선생님은 "이 시는 일제 강점 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민족 독립의 숭고한 가치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는 자발적 복종의 가치를 노래했다"라고 가르치며 "복종의 대상은 세속적 가치를 넘어서는 절대자의 진리로 해석될 수 있음"을 말했다. 나는 이 시의 역설의 매력에 빠졌었다. 복종을 하고 싶어 복종을 하는 것은 분명 자기 결정에 따르는 행위다. 또 그 복종 아래에서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역시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다. 결국 시인은 복종을 노래하는 듯하지만, 자신의 가치와 의지에 따른 선택 곧 자율성을 선포하고 있다. 시인은 복종 자체가 주는 유익은 언급하지 않았다. 복종하고 싶은 데 복종하는 의지적으로 선택된 행위가 주는 행복을 말할 뿐이다. 시인은 복종 아래에서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닌 철저히 자율성을 확보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꿈꾸는 자유와 자율성은 동일한 개념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자율성은 타인의 기준과 그것의 간섭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의사결정의 과정을 진행하며 최종 의견을 내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율성을 가진 사람들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비교해 보자. 아래의 표에 정리되어 있는 것처럼 자율성은 다양한 영역에서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자율성을 지닌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에 자신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들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명확한 우선순위를 기반으로 하여 질서 정연하게 자신의 삶을 이끈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 등이 행동하는 동기가 된다. 관계 안에서도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며 건강한 경계를 지키는 능력이 있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 및 욕구가 적응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내면과 외면이 비교적 동일한 진정성 있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심리적으로 안정된 건강한 상태를 비교적 수월하게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