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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Dec 23. 2022

트윈클 틸리

한 무명의 별이

나는 스코틀랜드, Tillicoultry(틸리쿠트리)라는 마을에 산다. 생소한 마을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데만 두 달이 걸렸다. 사람들은 틸리쿠트리를 줄여서 '틸리'라고도 부른다. 사천 명 남짓이 사는 조그만 마을 틸리. 이 마을의 자랑거리 하나를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오킬힐(Ochil Hill)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하이랜드 생수'가 이곳에서 나온다. 푸른 초장 위로 하얀 구름 떼처럼 뭉실뭉실한 양들이 통통한 돼지와 맞먹는 덩치를 자랑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 깨끗한 물의 효력이 얼마 큼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틸리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양과 소, 사슴, 말들이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계절이 푸르르니 이 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나에게 틸리의 자랑거리를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밤하늘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오후 네시가 되면 찻길 사이로 모여든 반딧불처럼 작은 가로등 빛이 하나둘씩 켜진다. 그렇게 겨울밤은 시작된다. 까만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총총 떠 있다. 땅 보다 하늘이 더욱 화려한 틸리. 하늘 샵들은 늦게까지 오픈하는 모양이다. 부산하게 트윈클 거리는 샵이 있는가 하면 여유 있게 번쩍이는 샵들도 눈에 띈다.  

“엄마, 달 옆에 반짝이지 않는 별 보여?” 화려하게 빛나는 별들 사이에 유난히 반짝이지 않은 별을 가리키며 딸이 물었다. 별이 반짝이지 않다니. 이상하게 쳐다보던 내게 딸은 곧 명쾌한 답을 건네주었다. “행성이거든. 반짝이지 않는 이유는 화성이라서 그래.” 천체투영관에 앉아서 인조 별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망원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맨눈으로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화성을 볼 수 있다니. '과히 경이롭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딸의 말에 의하면 빠르게 이동하는 별도 있단다. 사람이 만든 위성 같은 것. 언젠가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나면 재활용도 되지 못할 지구의 쓰레기가 저 멀리 빛으로 남아있을 거란 사실에 씁쓸했다.(우주에도 재활용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딸은 화성 밑에 있는 사냥꾼 오리온을 가리켰다. 조로로 반짝이는 별 세 개. 그 게 오리온의 허리 띠고 그 밑으로 두 발이 이어져 있단다. '오리온한테 다리가 달렸다고? 사람이었어?' 두발 달린 오리온을 상상하며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 그려 보았다.


"엄마는 북두칠성 아는데.. 어디에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한 가지, 북두칠성. 그나마 기억하는 북두칠성도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어리바리하게 눈알만 바쁘게 돌아가는데 딸이 북두칠성은 북쪽으로 가야 보인다며 북쪽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근데 별이 5개밖에 없었다. "저기 언덕 밑으로 가려져서 그래. 국자모양의 손잡이가 숨어 버렸네." 순간 밤에도 오킬힐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깜박 잊었다. 딸은 한층 업된 목소리로 북두칠성을 연결해 보면 큰 곰 자리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저 국자의 손잡이가 곰의 꼬리고 국자 모양은 엉덩이 부분. 저게 뒷 발톱이라느니. "엄마, 저기 보이지? 따라오고 있지?" 


만 개의 흰 쌀을 바닥에 뿌려 놓고 우유빛깔의 쌀 눈을 연결해서 큰 곰을 찾아보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저게 이거 같고 이게 저거 같은데. 이 끝의 별과 저 끝에 숨겨진 별까지 찾아서 연결하라니. 깜깜한 하늘 위로 큰 곰을 몇 번이나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뻔한 곰자리를 어떻게 못 찾을 수 있을까' 아주 갑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사냥꾼 오리온과 큰 곰자리를 얼른 검색했다. 눈으로 봐야지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멀리 있는 한 무명의 별이 옆에 있는 작은 별과 연결되고 그 작은 별이 또 다른 별들에게 손을 뻗치면서 큰 곰이라는 별자리를 만들었다. 화려한 샵으로만 반짝였던 밤하늘의 별들이 큰 곰이 되어 거대한 우주를 어슬렁 거리는 상상만으로도 '와우'가 절로 터져 나왔다. 


콜럼버스의 항해가 있기 오백 년 전, 바이킹들은 오랫동안 항해를 하며 아이슬란드나 그린란드를 발견했다. 지금 같이 스마트폰도 없고 고물이 되어버린 나침판 하나 없이 방위를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밤하늘의 별자리였다. 그들은 북극과 가장 가까운 붙박이별을 보면서 항해를 했다. 붙박이별이 잘 보이지 않는 날이면 양 옆으로 총총거리는 카시오페이아와 북두칠성을 보면서 붙박이별을 짐작할 수 있었단다. 이야기로 유명해진 별자리도 있다. 은하수에 다리가 없어 만날 수 없는 직녀성과 견우성. 애달픈 그들에게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를 놓아주었다. 그 덕에 칠월칠석이 되면 둘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별자리 속에 곁든 애절한 사랑이야기. 그러고 보니 전구가 발명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밤하늘을 보며 끊임없는 여정을 이어갔고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었었다.  


틸리에 산다는 건 검색해서 이미 만들어진 큰 곰 별자리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수십 개의 별들을 연결하며 나만의 별자리를 만들어 가는 거 일지도 모른다. 가만가만 반짝이는 한 무명의 별이 영국이라는 행성에서 온 별과 만나 이상하리만큼 연결된 것이 내 별자리의 시작이다. 그 사이 세 개의 작은 별들이 오리온의 허리띠처럼 끊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여 트윈클거린다. 우리는 또 다른 별들과 연결되면서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곤 한다. 배꼽 잡고 웃을만한 이야기가 쏟아질 때도 있고 희미해서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밀려올 때도 있다. 또 어쩔 때는 연결되지 말았어야 할 별을 만나고 후회하며 돌아 설 때도 있다. 분명한 건 이 거대한 우주에서 혼자서만 반짝인다면 이야기는 만들어질 수 없는 법이다. 커다란 곰별자리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독특한 이야기가 엮이면서 '와우'의 순간이 찾아올 거라 믿는다. 내 별자리로 인해 누군가에게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 누군가가 만든 다리 때문에 내가 건널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감사할 일이다. 별들이 비처럼 쏟아질 것 같은 밤이다. 내 인생도 헤어 나오지 못할 이야기들로 마구마구 쏟아지겠지. 오늘 밤 잠자기는 다 글렀다.   


 

사진: 틸리 하늘에서 보이는 큰 곰자리와 오리온자리 ('Night Sky라는 엡으로 자세히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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