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실시설계 미팅
실시설계에는 집의 조감도를 처음 만나던 날의 그 느낌과는 또 다른 설렘이 있다.
안마당은 9평이구나. 대청이 널찍하네, 작은 그랜드 피아노라도 하나 놓을까? 서쪽 쪽마루에는 누워서 하루 종일 책을 봐도 되겠어 등등. 딱딱해 보이는 설계 도면이지만, 기입된 숫자에 자연스레 생활이 입혀지다 보니 예쁜 조감도 보다 오히려 더 재미있다.
마루나, 벽체의 페인트, 욕실의 전반적인 색상 등에 대한 이야기도 슬슬 시작된다. 이런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하자 머릿속에 오랜 시간 고이 담아두었던 수많은 공간의 모습이 떠오른다. 세비야의 응접실, 바르셀로나의 욕실, 에든버러의 주방... 대부분 머나먼 타국의 모습. 심지어 눈여겨봐 뒀던 남의 집 마루 모양이나 주방 타일까지 대화에 등장한다.
페인트는 어떤 제품을 쓸지, 한지와는 잘 어울릴지, 여름에 모기를 잡다 보면(고양이와 함께 사는 관계로 모기약을 쓰지 못한다) 벽에 얼룩이 지기도 할 텐데 괜찮을지 등등 별별 소소한 이야기가 다 오간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속에 평소 생각하던 것,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꾸준히 묻어난다. 그렇기에 소소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들. 실시설계는 분명 어려운 단계이지만 이 정도면 순조로운 시작 아니었을까.
한편,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난항을 겪고 있다. 잔금이 1월 말인데, 전면적인 규제 때문에 모든 것이 불투명해진 상황. 자금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냥 아찔해진다. 우리 집은 은행이 사주고, 또 지어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하지만 어차피 안달해봐야 상황이 나아질 리도 없기에, 우선은 연초까지 차분하게 기다려 보기로 했다.
흔히들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집주인분을 잘 만나서 그런지, 훌륭한 건축가 덕분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별생각이 없어서 그런지 다행히 아직까지는 딱히 힘들지 않다. 물론 어렵다면 어려운 과정이겠지만, 더 행복하자고 시작한 일인 만큼 앞으로도 밝고, 즐겁게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