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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당 Dec 06. 2021

기본설계를 마치며

기본설계가 마무리되었다.


설계는 기본적으로 집을 그려나가는 과정이지만, 막상 겪어보니 오늘과 내일의 나를 그려보는 것이기도 했다. 평소 무엇에서 즐거움을 얻는지, 또 앞으로는 집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양껏 궁리해 볼 수 있었던 시간.


'한옥에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야 오래전부터 해왔다. 하지만 혜화동의 골목길 안, 춘천의 작은 마을, 그리고 물론 서촌과 북촌까지, 먼저 비슷한 길을 걸어본 분들의 기록이 없었더라면 그런 막연한 생각을 현실화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은 내 마음속에서 조용하지만 든든한 조력자, 본받고 싶은 모범, 아니면 잘 구워진 숯을 건네주는 숯꾼의 역할 등을 맡았다.


또한 그런 기록 덕분에 훌륭한 건축가도 만났다. 때로는 커다란 돛처럼, 때로는 항구의 불빛처럼, 그렇게 나를 이끌어 나아가게 해 주었기에 기본 설계에 단 한 톨의 아쉬움조차 남겨놓지 않을 수 있었다. 잠깐 동안이지만 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 소장님과 뭔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내게는 정말 큰 행운으로 느껴진다. “계약"으로 묶인 관계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잔뜩 얻고 있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우선은 비싼 금리로 돈을 엄청나게 빌려 잔금을 치러야 한다. 공사가 시작되고 나면 일하시는 분들이 혹여 크게 다치시지는 않을까 매일같이 걱정하게 될 거고, 이웃에게 끼칠 민폐에 땅만 쳐다보며 현장을 찾게 될 거다. 그 외에도 예상치 못한 파도를 또 수없이 만나게 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든든한 우군과 함께라면, 그리고 물론 가족과 함께라면 다가올 과정도 지금까지 처럼 나름 재미있게 헤쳐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나는 이미 그렇게 믿고 있다.

빠위네 집, 선한공간연구소

2021.05.21. 삼청동 한옥 매매 계약

2021.06.07. 설계예비계약: 선한공간연구소

2021.08.07. 정든 집을 떠나 사택으로 이사

2021.08.18. 측량일, 사전 미팅(1)

2021.09.02. 사전 미팅(2)

2021.09.06. 설계계약: 선한공간연구소

2021.09.30. 삼청동 한옥 중도금 지급 완료

2021.10.08. 첫 번째 디자인 미팅

2021.10.20. 가구 가전 사이즈 조사
2021.10.22. 두 번째 디자인 미팅

2021.11.04. 마지막 세입자분의 이사 

2021.11.05. 세 번째 디자인 미팅

2021.11.19. 네 번째 디자인 미팅

2021.12.01. 별채 돌아보던 날

2021.12.03. 다섯 번째 디자인 미팅

(기본설계 종료)


제주의 일몰(2018), Pentax MX/Fuji Superia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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