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세입자분이 자리를 비워주신지 2주 정도가 지난 어느 추운 날 오후, 집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 삼청동을 찾았다. 어쩌다 보니 배우자와 소장님이 이곳저곳을 확인하는 동안 나는 대청에 앉아 잘 하지도 못하는 수다를 떨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정말 하나도 돌아보지 못할 줄이야.
하필 그날 동창분이 한 분 더 세상을 떠난 날이라 그런 얘기 잠깐, 미국에서 치킨집을 하시는 동생분 동네에 BBQ 인지 BHC 인지가 진출해 어려움이 크다더라는 말 잠깐, 시골에서 올라와 오랜 시간 살고 있는 사람들 말고 북촌에 살던 진짜 토박이들은 미국으로 꽤나 많이 건너갔다는 말 잠깐.
나는 워낙 말주변이 없어놔서 누구랑 얘기를 하건 거의 듣기만 하는 편임에도 뭔가 말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아 마당을 어찌 꾸밀지에 대한 얘기 조금, 집의 옛 모습에 대한 얘기 또 조금. 그러던 중 어르신께서는 마당 한편에 심어져있는 앵두나무를 잘 살렸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새 기와는 번들번들해서 예쁘지가 않으니 오래된 기와를 그대로 써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게 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니 큰일이다.
따듯한 대청에서 커피나 홀짝거리며 앉아있다 보니 밖에서는 어느새 작업이 끝났다. 아무리 집을 팔았다고 해도 잔금일까지는 당신 집이니 누가 자꾸 오는 것이 참 싫을 법도 한데, 한 번 내색을 안하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 원하시는 걸 다 들어드릴 수야 없겠지만 지금 이 집의 요소를 어떻게 남길지에 대한 고민을 나도 분명 더 해봐야 한다.
긴 수다 내내 서쪽 창을 채우던 오후의 따스한 빛, 칼바람이 불던 길바닥과는 달리 별세계처럼 고요하던 마당의 공기, 대청 창문 밖으로 보이던 새파란 겨울 하늘, 그리고 물론 오갔던 얘기들. 이 정도면 집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것만큼 좋은 시간 아니었을까.
2021.10.20. 가구 가전 사이즈 조사
2021.10.22. 두 번째 디자인 미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