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세입자분께서 자리를 비워 주셨다.
우리가 이어받게 될 삼청동의 한옥에는 셋방이 세 개(!)나 있다- 이렇게 써놓으면 무슨 대궐집인가 싶겠지만, 스무 평대 건물이다. 계약 당시 문간방의 경우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세입자가 없었고, 본채의 끝방과 사랑채에 한 명씩 있었다.
본채 끝방에 계시던 분은 약속한 날짜보다 일찍 집을 비워주셨지만, 사랑채에 계시던 분은 집을 비워주시기로 한 날을 훌쩍 넘겨버려, 그 방만큼은 측량일에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중도금 지불 시점까지는 세입자가 모두 정리되는 게 계약 조건이었기에, 그 이후부터는 어르신께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세입자는 이제 나갔느냐, 대체 언제 내보내실 거냐”며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난관이 있어도 ‘낭만적(?)’으로, '아름답게(?)' 가겠다고 시작하기 전부터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터라 달력의 날짜만 보며 속앓이를 적지 않게 했었다.
그러던 와중 지난 목요일 늦은 시간, 반쯤은 기쁘고 또 반쯤은 너무나도 슬픈 목소리로 어르신이 전화를 걸어오셨다. 드디어 마지막 세입자 분도 내보내셨다고, 이제 아무 때고 편하게 와서 집 구경하면 된다고, 그런데 막상 집에 혼자 계시니 무섭다고.
응당 들 줄 알았던 후련하고 기쁜 마음보다 속상한 마음이 더 컸다. 전세 문제로 고작 2년마다 이사를 다니면서도 살던 동네에, 살던 집에 정이 들어 너무나도 떠나기 힘들었던 나의 지난날들. 그에 비해면 나고 자란 동네에서의 80여 년의 시간을 뒤로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으리라.
좋은 시절을 보냈던 널찍한 집을 떠나 말년을 작고 허름한 집에서 보내셨던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랬을까, 수화기로 들려오는 어르신 목소리에 마음이 너무나도 아파- 일방적인 동정이 아니라, 나도 그리고 그 어느 누구라도 언젠가 겪게 될 혼자됨에 대한, 그리고 내리막에 대한 자기 연민 때문에- 주말에 막걸리 한 병과 삼계탕을 싸 들고 찾아뵈었다.
건네주신 건, 대청에 걸려있던 글귀, 먼저 세상을 떠나신 친구분께서 남겨주신 해하도(海蝦圖), 마당 한편에 조용히 놓여있는 당신 어머님께서 쓰시던 맷돌, 그 외에도 이것저것 더 놔두고 가겠노라는 말씀. 내게는 그게 마치 '놔두고 가게 해달라는 부탁'처럼 들렸다- 집과 손 때 묻은 물건 안에 담긴 이야기를 넘겨받아 부디 또 다음 사람에게까지 잘 전달해 달라는 부탁. 사람은 떠나도 장소와 시간은 머물던 이의 기억을 담고 끝없이 이어진다는 그런 당연한 이야기. 그런 길고 긴 이야기의 아주 짧은 장을 이제 정말 이어받게 될 것만 같아 마음이 굉장히 복잡하다.
북촌에 한옥을 한 채 장만하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의미를 지니는 일인지 실감하고 있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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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2. 두 번째 디자인 미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