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버거와 팬케익의 경계

야근에서 비롯되어 여행으로 도드라진 그녀&그의 여행일기

by 직업은투명인간

여행으로 2행시를 만들어 그녀한테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행복해지자.” 그녀는 뜸도 없이 “오빠 그게 뭐야, 노잼이야” 평가했다. 내가 봐도 참신함과 재미가 없었다. 여행을 표현하기 엉성하고 서툴렀다. 내일이면 파리로 떠나기에 런던에서 남은 시간은 오늘 뿐이었다. 오늘 일정은 그녀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런던에서 뭐할까? 그녀의 답은 심플했다. “오빠 우리 한 끼 해요!” 테이블에 진득하니 엉덩이를 붙이고 식사하자였다. 그동안 이동 중에 먹거나 밥시간을 쪼개어 이곳저곳을 둘러보았기에 여유로운 환경에서 식사를 하지 못했다. 마지막 날에 그녀의 여행일침이었다. 관광지 리스트를 더 채운다고 해도 이득이 없었다.

맛집이 아니라도 괜찮았다. 가까운 곳에서 여유롭게 하는 한 끼였다. 레스토랑을 정하기는 의외로 쉬웠다. 숙소 근처를 오고가며 크리스마스데이 문구가 적힌 OOOO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외관은 로컬식당처럼 보였는데 들어서니 인테리어 맛집이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오너먼트가 세련되어 보였다. 무엇보다 천장의 일부가 유리창 루프로 되어 하늘이 보였다.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혹시라도 음식 맛에 실망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여종원업이 물병을 건네며 주문을 받았다. 물병에는 오이 슬라이드가 들어 있었다. 이색적이었다.


그녀는 햄버거를 좋아한다. 신제품 버거가 출시되면 새로운 맛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버거부심이 대단한 편이다. 여기서는 두말없이 버거를 주문해야했다. 브런치의 도시, 런던이니 핫케익도 주문했다. 메뉴판에 있는 맥주를 물어보니 종업원이 시음용 맥주를 준비해주었다. 시음용이지만 과할정도로 잔에 채워주었다. 맥주 맛을 떠나서 사랑이 넘쳤기에 맥주를 주문 안할 수 없었다. 옆 테이블에는 직장인이 앉아 점심을 먹으며 연말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흔히 알던 핫케익이 아니였다. 핫케익의 겉면은 시럽으로 광택이 났고 한국에서 먹던 것과 다르게 커다란 버거의 형태였다. 사이 사이에 베이컨과 사과청 같은게 들어있었다. 치킨버거는 통닭버거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커다란 닭튀김이 빵 사이에 숨어 있었고, 감자튀김이 세트로 나왔는데 익숙한 세트 구성이었다. 맛을 보기 전에 시각적으로 압도 되었다. 양이 생각보다 많아 진득하게 점심을 먹어야했다.


나온 음식 모두 버거로 보여서 먹으면서 궁금해졌다. “팬케익과 햄버거의 경계는 무엇일까?” 그녀가 정곡을 찔렀다. “팬케익은 아메리카노가 잘 맞고 햄버거는 콜라가 땡기지” 듣고 보니 수긍이 바로 되었다. 내 미각 지금은 맥주가 아니라 아메리카노를 외치고 있었다.

습관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손으로 먹는 버거가 익숙했기에 이번에도 그럴 참이었다. 그런데 버거의 크기도 그렇고 모양이 빠져 보일까 나이프와 포크를 택했다. 버거를 손에 쥐어 먹는 심플한 과정에서 나이프로 빵과 토핑을 자르며 포크로 찍는 여러 과정이 발생해서 답답함이 밀려왔다. 반면에 즐거움도 있었다. 빵 사이에 토핑을 잘라 눈으로 한번 맛볼 수 있었고, 햄버거를 잘라서 먹는 행위자체가 주는 느긋함이 있었다. 서툴렀지만 완벽한 점심식사였다.


저녁에는 부족한 런던여행을 채웠다. 다른 곳 포기해도 런던아이는 놓쳐서는 안 되었다. 어제 런던브릿지를 보고 근처에 있는 런던아이까지 구경했으면 동선으로 완벽했을 텐데, 오늘에야 엇갈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선이 꼬여 미안했지만, 그녀의 한마디가 위로가 되었다. “오빠, 어제 비가 왔어” 그토록 징하게 여겼던 런던의 비가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런던아이를 보러 Westminster역에 내렸다. 주변에 세인트마가렛 교회, 빅벤, 국회의사당 등 관광명소가 밀집해서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밖으로 나가 고개를 들어보니 코앞에 빅벤타워가 보였다. 처음에 아닌 줄 알았다. 보수공사로 인해 주변을 펜스로 감싸 영화에서 보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나마 벽면시계는 그대로여서 알아챘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대상은 달랐다. 빅벤타워는 액션영화에서 종종 나와 관심이 있던 장소였고, 그녀는 런던아이 쪽이었다. 빅벤타워는 공사로 반만 본 셈이 되어 아쉬웠다.


템즈강을 따라 조금 걸으니 원형으로 된 반짝임이 보였다. 그녀가 기다리던 런던아이였다. 측면에서 보였지만 반가운 마음에 구경하며 사진을 남겼다. 런던아이를 봤으니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녀는 달랐다. 인스타에서 봤던 구도가 아니었다. 그 느낌을 찾아 정중앙을 마주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는 런던아이가 좌우대칭으로 흐트러짐 없는 원으로 보였다. 정면의 앵글이 측면보다 근사했고, 템즈강 위로 조명을 바꾸며 돌아가는 관람차가 발산하는 로맨틱의 힘은 엄청났다. 여기는 대부분이 커플이었다. 장소가 주는 힘은 대단했다. 사진을 찍는 사람, 그냥 구경하는 사람들 모두 설레어 보이고, 대부분의 커플은 입맞춤을 하는 사진을 찍었다. 런던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소는 여기일 것이다.


사진을 남기기 위해 외국인에게 부탁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외국인이 찍은 사진은 우리 정서와 꽤 달랐다. 여기에서 인생사진을 한 장을 남기기 전에 떠날 수 없었다. 유럽의 여행지 어디든 한국인이 있기에 우리나라 여성분께 부탁했다. 말이 통하다 보니 찍어주는 사람도, 찍는 사람도 편했다. 덕분에 사진을 남길 수 있어 고마웠다. 마지막 날에는 욕심이 생겨난다. 여행을 세우며 간단히 훑는 도시였는데 내일 떠난다고 생각하니 하루만 더, 일주일만 더, 이런 욕심은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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