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신분을 치르는 밤
사랑은 새것의 지갑과 같아 길들일수록
조금씩 제 안이 패여 간다
부대낀 습관부터 해져가다가
언젠가 신분을 잊게 될 수도 있다
사랑이 이처럼 유실된다
사랑이 계절을 누벼 간 후로
목련이 덧나고 있다
반들거리는 면에 접힌 사람,
상처는 입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트는 것이다
사랑이 이처럼 아리다
사랑에게 한 시절 접착된 사람이
갈피 속 증명사진으로 눌려 있다
잃어버렸으나 잊은 건 아니라서
지갑이 스스로 신분을 치르는 밤
분실물센터에서 무릎 껴안듯 접혀
사랑이 이처럼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