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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실패를 피했어야 했다

결론 - 마지막 회

by 박기주

올해 상반기, 내 조직은 또다시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미 1월부터 성과가 좋지 않았고 이후에도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였다. 더 어려워지는 시장환경, 고객사의 무리한 요구, 직원 충원 지연 등 변명할 거리가 없진 않았지만 뭐가 됐든 오로지 내 책임이었다.


마감 결과가 나온 날, 나는 야근을 했다. 특별히 할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 털어내지 못한 채, 답답한 얼굴을 감추며 가족들에게 웃을 자신이 없었다.


직원들이 다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문제투성이 실적이 뜬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지만 딱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막막한 숫자들을 쳐다보고 있자니 성과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번 달 낼 대출 원리금 상환이 떠올랐고, 다른 종목은 다 오른다는데 여전히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주식 생각도 났다.


모든 것이 온통 답답할 뿐이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야경이 위로가 되면 좋았겠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깨를 나란히 한 다른 대기업 건물들 뿐이었다. 그 건물들도 여전히 많은 사무실에 불이 켜 있었다.

저 가운데도 분명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 즉,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잘 풀리지 않는 현실과 암울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 ‘성공하지 못한 직장인’들 말이다.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그날 야근은 무척이나 길었다.



성공.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번 태어났으면 성공했다는 평가쯤은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정말 많은 자기 계발서, 특히 성공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혹은 어쩌면 그런 책들을 읽었기에 성공을 목표로 삼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그 지글러, 나폴레옹 힐, 데일 카네기, 맥스웰 몰츠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자기 계발서에서 시작하여 구본형, 김미경, 이지성 등 국내 작가들의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특히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토니 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는 내 삶의 바이블이었다. 책이 닳도록 읽었고, 요약본을 만들어 수시로 숙독했으며, 독서 모임에서 직접 강의를 하기도 했다.

토니 라빈스. 내 인생의 10년은 이 사람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Steve Jurvetson,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조금씩 내용이 다른 책들이었지만 이들이 말하는 메시지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자기 인생의 사명과 핵심 가치를 명확히 파악한 후 우선순위에 따라 꾸준히 실행하면 성공할 수 있다”


나는 그 책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내 인생의 미션(내가 왜 존재하는가)과 비전(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을 중심으로 사명서로 만들었고, 일곱 가지 핵심 가치를 도출한 뒤 장기, 중기, 단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왔다. 그 핵심 가치 중 몇 가지를 적어본다.


나의 핵심가치 #2 “탁월함”. 나는 내가 일하는 분야에 있어 최고의 탁월함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분야가 되었든 공신력 있는 전문성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우월한 역량을 갖추고, 이를 통해 나 스스로의 인정과 남들의 존경을 이끌어낸다.
나의 핵심가치 #4 “젊음”. 나는 생각과 외모와 행동을 젊게 가꾸기 위해 노력한다. 나이를 핑계로 도전을 멈추지 않으며 새로운 문화를 배척하지 않는다.


계획도 계획이지만 실행 또한 나쁘지 않았다. 이전 글에도 적었지만 난 초중고 12년 개근상을 탔을 만큼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라 꾸준함에는 자신 있었고, 수년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프랭클린 플래너나 GTD(Getting Things Done), 마인드맵 프로그램 등도 습득하면서 효과성을 드높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살기 시작한 것이 이십 대 후반이었는데 사십 대가 넘어서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꾸준히 사명서와 핵심 가치를 검토하고 업그레이드했으며, 중간중간 흔들림은 있었지만 계획대로 실행을 해왔다.


그야말로 ‘성공방정식’에 따라 살아온 셈이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내가 보고 배운 수많은 책의 방법이 옳았다면 오십을 앞둔 지금의 나는 ‘성공’이란 단어에 매우 가까이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연재의 서론에서부터 밝혀왔듯 내 인생은, 특히 커리어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대기업에서 자리 하나를 꿰차고 있긴 하나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 지금 회사에서 나가면 아무런 대안이 없을 만큼 미래 준비를 잘하질 못했다. 자산이라도 많으면 모를까 부동산 투자도 못해 또래보다 가난하며, 젊었을 때보다 20kg은 더 나가는 무디고 지친 몸으로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건 누가 봐도, 성공한 커리어라 할 수 없다.


“성공학의 이론을 충실히 따라왔는데 왜 나는 이런 건가?”


언제부턴가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한 이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깊은 고찰을 거듭한 결과 내가 왜 실패했는지 이유들을 도출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쓴 총 열다섯 가지의 ‘실패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1부 - 진로 선택에서의 실패]

1. 서울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2. 회사 이름이 아닌, 직무를 택해야 했다

3. 가라앉는 배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4. 서울대가 아니라 의대를 가야 했다

5. 한 번쯤 크게 질렀어야 했다


[2부 - 일상에서의 실패]

6. 단점은 입사 첫 해에 바로 잡았어야 했다

7. 시계를 살 게 아니라 치아교정을 해야 했다

8. 유튜브를 진작에 끊었어야 했다

9. 일기 쓰기를 관뒀어야 했다 (40년 일기 후기)

10. 의미 없는 술자리를 피해야 했다


[3부 -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실패]

11. 사라질 것들에 인생을 걸지 말았어야 했다

12. 악명이라도 달아야 했다

13. 유턴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14. 어떻게든 실수하지 않았어야 했다

15. 인생이 주는 힌트를 잡았어야 했다


이 이유들은 결은 다르지만 관통하는 주제는 동일하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기에 앞서, 우선 실패를 피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소나무도 사막에 심으면 잘 자랄 수 없다. 아무리 타고난 명마라도 경마장이 아닌 동물원에 넣어버리면 달릴 수 없다.


성공하는 방법보다 먼저 생각해야 했던 것은 실패를 피하는 방법이었다. 이 깨달음 끝에 내 실패의 마지막 이유를 이렇게 추가하고자 한다.


16. 성공하려고 애쓰기 전에, 우선 실패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이것이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었던, 마지막 실패의 이유이다.




인생에는 굉장히 많은 함정이 있다.


어떤 함정은 발을 잘못 딛는 순간 천길 아래로 우리를 굴러 떨어지게 만들고 어떤 것은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할 사이에 서서히 우리를 가라앉히거나 썩게 만든다.


그런 함정을 밟고 가면서 인생의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혹 원하는 것을 쟁취하더라도 함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혹은 계속 새로운 함정에 빠져버리면 애써 얻은 성취도 쉬이 놓쳐버리거나 변질될 것이다.



그 함정의 이름은 바로 ‘실패’이다.


성공의 정의는 각자에게 달렸다. 누구에게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누구에게는 명예를 거머쥐는 것이, 누구에게는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성공일 것이다. 다 맞는 말이다. 여기서 성공의 정의까지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되었든 당신이 정의하는 그 성공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실패’이며, 당신을 성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실패의 이유’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열다섯 가지의 이유 외에도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실패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뭐가 되었든, 우리는 그 이유들을 피해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성공을 향한 당신의 도전을 응원한다.

부디 실패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뤄 내시길.

그리고, 나처럼 실패하지 않길 바란다.




연재의 마지막 글입니다. 오랜 기간 속에 응어리져 있던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살다가 새로운 실패를 경험하거나 잊고 있었던 다른 실패의 이유를 찾아내면 글을 추가할 수 있겠지만 연재를 시작할 때 계획했던 주제는 대부분 다 다뤘습니다.


본 연재 이후 당장 새로운 연재계획은 없고, 지금까지 쓴 글들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 논리나 일화를 보완한 후 출간에 도전해보고자 합니다. 이왕 장편의 글을 썼으니 한 명에게라도 더 닿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그간 모자란 글을 읽어 주신 분들, 특히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꼭 실패하지 마십시오.


박기주 드림



(따로 출처를 표기한 사진을 제외한 모든 이미지는 Vecteezy.com에서 구입했습니다. No attribution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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