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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May 01. 2024

출정(出廷)과 마라톤

"출정~~"


‘출정. 출정. 광.주.출.정.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출정’ 소리에 ‘광주출정가’가 입가에 맴돌았습니다.


여기서는 ‘출정’(出廷)이 법정에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교도관의 단 마디 외침이 깊은 잠을 깨우는 자명종의 알람 소리 같습니다.

아침 운동시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종일 감옥 복도는 개미 한 마리도 다니지 않는 듯 조용합니다.

‘철커덩, 철커덩...’ 수용자 방마다 철문들이 열리고 법정에 나가는 수용자들이 하나씩 복도로 나옵니다.

내미는 얼굴마다 지난밤 검은빛을 채 깨우지 못한 어둔 색입니다.



오전에 법정으로 나갔던 수용자 대부분은 오후에 이전에 잤던 자기 집이 아닌 어제 잤던 감옥의 방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법정에 들어서면서 방청석에 있던 가족들을 보았습니다.

죄인으로 불리는 순간까지 고개 숙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고가 끝나고 돌아 나오면서 말도 없이 다시 헤어졌습니다.

다가가 손을 잡을 수 없는 것을 서로 알고 있습니다.

손을 들어 흔들지도 않았습니다.

이를 굳게 문 미소 띤 눈빛은 온 마음을 다 전하고 있는 것을 보였고 보았습니다.

당신을 찾진 않았습니다.

법정에서가 아니라 집에서 보기를 바랐습니다.




나도 어제 잤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제와 같이 늘 하는 편지를 씁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오늘 편지에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입니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지난날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날들을 보내고 오늘까지 버텨온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 둘 뿐입니다.


재판 끝내고 아침에 타고 왔던 호송차에 올라타 법원을 빠져나오면서 주차장에 세워진 빨간 자동차를 보았습니다. 주인을 잃었는지, 주인이 버렸는지, 비를 맞고 있어서인지 차가 검붉게 보였습니다.

순간 울컥했지만 이를 물자 복어처럼 입 볼이 동그래졌습니다.

호송차 창문에 나 대신 빗방울이 맺혔습니다.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비 내리는 먼 산을 바라다보았습니다.



묶이고 차인 두 손이지만 마음은, ‘아~, 편하다’ 였습니다.


어제 이미 정해졌을 판결문을 오늘까지 나는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머릿속은 바람으로 채워집니다.

선고 끝까지 희망의 주문을 끊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나의 뜻이지, 신의 뜻을 구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신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신을 내게로 끌어오는 격입니다.

나의 희망을 신에게 주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신의 판단이 나의 희망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나의 기도와 희망을 당신에게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희망의 기대가 당신에게 더 큰 실망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을 챙기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작은 개미조차 밟지 않으려고 고개 숙여 걷기도 했습니다.     


나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매우 편하고 고요합니다.

내가 마음을 비우려고 해서가 아니라, 이제 마음에 채울 게 없어지고 나니 정말 편해졌습니다.


신비한 체험입니다.

알 수 없는 것에 마냥 기대려고만 했던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선택은 언제나 주저하게 합니다. 알 수 없는 앞을 두는 불안이 편할 일이 없습니다.

선택이 앞에서 불안을 가져다준다면, 결정은 불안을 지우는 일입니다.

선고가 나의 선택도 나의 결정도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선택과 결정에 기대는 불안이 더는 내 앞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편하다’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할 일이 생겼습니다.

나의 길을 가는 것만 남았습니다.


종교의 오랜 역사는 희망의 성취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힘들면 무언가에 기대게 됩니다.

알 수 없는 것에 기대는 바람은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알게 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새로운 자기 의지의 힘을 얻게 됩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 “심신을 위해 기도하는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으려면, 기댄 것이 사라져 넘어진 내 모습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들의 기도가 지금 이 편안함의 고요를 선물해 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의 편안이 그들의 기도에 답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기대(企待)는 내가 아닌 것에 기대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 서지 못하고 기울어진 모습입니다.

기울어진 모습은 불안합니다.

더는 기댈 것이 없어지니, 나 스스로 바로 서야 할 것을 깨닫습니다.


오후가 되어 새로이 세 권의 책이 들어왔습니다.

1. 나의 아버지 박지원

2. 손잡고 더불어, 신영복과의 대화

3.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신영복 유고


책 소개를 하지 않아도 당신도 뿌듯해할 거라 생각됩니다.     


어제 누웠다가 오늘 아침에 일어났던 자리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어제 그리고 그제 했던 대로 오늘도 책을 펼칩니다.

새로 들어온 책을 급히 읽으려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시간이 많아졌다는 느낌이 마음에 이미 자리 잡았나 봅니다.


몇 번을 봤던 선생님의 <더불어 숲>을 마치 점괘라도 보듯 아무 데나 펼쳤습니다.     

그리스 아테네 북동쪽 마라톤 평원에서 띄우는 엽서였습니다. 지금의 42.195km 마라톤 거리를 모두 알게 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읽습니다.

페르시아와의 전장에 나선 아들들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아테네의 모든 어머니에게 승리의 소식을 좀 더 빨리 전해주려고, 좀 더 숨을 참아가며, 좀 더 빨리 달렸던 어린 병사를 떠올리던 글이었습니다.


오늘 아침까지 숨을 참아왔던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2,500년 전의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우리는 이겼다”라고 전했던 어린 병사의 외침과, 오늘날 올림픽 마라톤 경주자들이 “내가 이겼다”라고 소리치는 것의 큰 차이를 봅니다.


책의 여백에 전에 읽으며 적었던 내 글을 봅니다. 검은색입니다.


“‘빨리’, ‘더 빨리’, ‘너보다 더 빨리’로 살아왔다.

경쟁은 싸움과 다르지 않다.

시합은 인종과 종교, 국가로 패를 짓는다.

‘빨리’ 달려야 하는 것은 ‘이겨야 하는 너’가 아니라 ‘기다리는 어머니/당신’이다.

사방이 갇혀서 빨리도, 천천히도 기다리는 가족에게 달려가지 못한다.

마음만 소리 없이 째깍댄다.

시침은 움직이지 않는다.

분침은 더디고 더디게 한 칸씩 움직인다.

감방 벽에 걸린 시계엔 왜 초침이 없나...”


오늘은 파란색으로 다른 여백을 찾아 적었습니다.


“00년 00월 00일, 항소심 기각


마라톤의 병사가 되고 싶었다.

기다리고 있을 당신에게 승리의 소식을 빨리 달려가 전하고 싶었다.     

달려가지도, 걸어가지도 못하고 다시 갇혔다.

다시 앉아 있다.

나는 다시 나만의 마라톤을 준비한다.

...

전에는,

‘나’여서는 안된다고 외쳤다.

‘우리’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면서 ‘나’를 드러내며 살았다.     

이제,

나는 ‘우리’에 갇혀 있지 않다.

‘우리’에게서 떠나 ‘나’만 본다.

그리고 ‘나’만 배운다.

같이 달릴 ‘우리’는 없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이 아니다.

나 혼자 가야 할 길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자.

좀 더 빨리 달린다고 코스가 짧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코스를 완주하는 일만 있다.

나의 길을 가자.

더 빨리는 아니다.

물처럼 흐르자.

고이면 뒷물을 기다리자.

좁으면 급하게 흐르다 높으면 떨어지고

넓으면 고요 하자.

숨을 고르자.

걸려 넘어질 게 없으니 눈을 감아도 좋다.

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걷는 길이다.

걸어도 좋다.

뛰어도 좋다.

나는 나의 마라톤을 달릴 뿐이다.

끝이 있으니 갈 수 있다.

가야 한다.


오늘 당신에게 가서 말로 전하지 못하고 편지를 보냅니다.

당신의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당신의 기다림은 또다시 나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기다림에 채워줄 책들이 쌓여갑니다.

나에게 시간이 더 주어졌습니다.

책들을 더 읽을 수 있고 당신에게 편지글을 더 쓸 수 있습니다.


끝을 모르는 아픔은 불행입니다.

끝을 아는 기다림은 행복입니다.


정해진 남은 날들은 그리움을 사랑으로 채워갈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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