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희 Apr 19. 2024

투이 생각

  굵어진 빗줄기로 금세 나뭇잎들이 짙어진 고랭지. 이곳의 봄은 유난히 더디 온다. 도심의 봄꽃들이 시들해질 때쯤 마을에 개나리 목련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늦어도 너무 늦은 시기에 피어난 봄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뭇잎이 짙어짐과 동시에 쓰러지고, 이어 푸릇하게 올라온 배추들은 밭을 수북하게 짙은 초록으로 채워놓는다. 일 년 전 투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속이 꽉 찬 배추가 밭을 두둑하게 채운 모습은 겨우내 허기진 속을 채워줄 것 같은, 막연히 든든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여름이 오기 전 보릿고개인가 싶은 시기에 맞춰 농부들에게, 인부들에게, 숙소와 식당 주인들에게도 혈액이 돌 듯 골고루 몫을 나누어 주는 게 저 봄배추인 탓이다. 하지만 다시 봄을 맞아 임의롭게 자라고 있는 배추를 볼 때면 내게 돌아올 몫을 떠올리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무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전 09화 한 씨가 사라진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