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남이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중이었다. 옆집에 고등학교 3학년이 살고 있었는데, 서울로 대학 시험을 치러 가는 것을 보고 아내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결혼 이후에 당신과 헤어져 산 건 그런 직업을 가진 남자를 선택한 내 죄지만, 아이들과 떨어져서는 못살겠소.”
“누가 그렇게 살래? 다 큰 사람이 그렇다고 울기는...”
“이제 곧 녀석들이 대학에 진학할 시기가 닥쳐오는데, 서울로 진학하는 놈이 생기지 않겠어요? 모두 다 그럴 수도 있고... ”
사리에 맞는 말인데 네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학교성적은 모두 좋으니 그녀의 말대로 전개될 확률이 높고, 먼 장래가 아니라 곧 시작될 일이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지만 세워놓은 대책이 아무것도 없다.
서둘러 서울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우선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려고 노력하면서, 그곳에 아이들을 전학시킬 학교를 물색하고, 확정되면 그 근처에 우리 식구가 살만한 집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그런 일들이 끝나면 전학시키고 이사만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살고 있는 집을 팔려고 부동산에 갔더니 한여름이고 이사철이 아니어서 제값을 받기 어려우니 때를 기다리란다. 시작부터 엇박자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로 올라가 아이들을 전학시킬 학교들을 알아보니, 학군이 좋은 곳은 여러 명의 아이들을 같은 학교로 배정받기는 힘들다면서, 방학 중이라 사정이 조금 낫지만 학기 중에 옮기려면 더욱 어렵다는데, 이 일들은, 내가 집에 있는 동안 아이들의 방학 중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이 급해졌다.
며칠 동안 물색하며 발품을 판 후에야 비슷한 곳을 정하긴 했는데, 그 근처에 마땅한 집을 구하는 게 선결과제다. 우선 전입을 해서 서울시민이 돼야 다음 단계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의 도움이었는지 원하던 곳 주변에 집이 빨리 나타나서 순조롭게 독채 전세로 계약을 했고, 전학문제도 특별한 어려움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 이사만 하면 된다.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부산으로 내려갔지만, 부산 집이 팔릴 징후는 아직도 보이지 않아서, 통장 잔고를 확인해 봤더니 새로 전세로 얻은 서울집의 잔금을 치르기에도 벅찼다. 생활비와 이사 비용을 고려해 은행대출까지 받았는데, 우려했던 것보다는 집이 빨리 팔려서 빌렸던 돈을 모두 갚고 나서도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함께 살고 계시던 부모님께 제대로 상의를 드리지 못했지만, 다행히 서울에 얻어 놓은 집이 조금 낡기는 해도 방의 개수도 많고 넓어서 함께 모시고 올라간다 하더라도 문제 될 건 없어서 안심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늦게나마 사정을 설명드리고 서울로 함께 올라가자고 권유했지만, 자기들은 동행하지 않으시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그동안의 처신이나 행동에 섭섭하셨나 싶어 놀랐지만, 듣고 보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만약에 자기들에게 갑자기 무슨 (병이 들거나 사망하시는) 일이라도 생기면 아들도 없는 집에서 며느리 혼자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작은아들 집에서 임종하면 장남이 체면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았다.
청하기는 했지만 내 입장도, 아이들이 이미 자라서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나이도 지났고 입시준비를 시작하면 식구가 많아 시끄러운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인 계산도 작동되어,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내 식구들은 그렇게 서울로 떠났고, 부모님께서는 마산 큰집으로 복귀하셨는데, 그게 그와 마지막 대면일 줄은 그때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