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만 강도를 당한 것은 아니다. 뱃사람들에게 항구는 우호적인 곳만은 아니다.
브라질의 대도시 <상파울루>의 외항, <산토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에 입항을 했는데, 조리장이 부식을 사러 가자고 사정을 했다. 내가 함께 가지 않으면 포르투갈어를 통역해 줄 사람이 없단다.
그래서 따라나섰다가 또 봉변을 당했다. <산토스>에서 택시비를 흥정하다가 강도를 만나 전액을 털린 것이다. <상파울루>에는 나가 보지도 못하고 다시 배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기분이 꿀꿀하고 목도 타서 며칠간 단골로 다니던 술집으로 가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술집 주인이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다가오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방금 겪은 일을 얘기했다.
그런데 30분도 지나기 전에 내 목에 칼을 겨누고 돈을 갈취해 갔던 녀석들이 잡혀 와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 알고 보니 술집 주인이 그 동네 최고 주먹이었다.
돈을 되찾은 우리는 술집 주인이 수배해 주는 트럭을 타고 <상파울루>로 가서 무사히 부식 구입을 마쳤다. 얼마나 고맙던지 그날부터 출항할 때까지 그 술집을 통째로 빌려 매일 밤 파티를 열었다.
강도 같은 일만 험한 일이 아니다. 배를 내려 해운 관련 단체의 연구 위원으로 잠시 근무할 때 나는 다른 한국 선장이 험한 꼴을 당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한국 선장이 필리핀에서 중죄인으로 몰려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의 감형 청원이라도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그 팀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먼저, 감옥으로 가서 면회를 했는데, 타국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피골이 상접한 몰골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입항하기 전에 동남아 여러 항구를 거쳤기 때문에 접대품이 동이 나 필리핀에서는 더 이상 줄 게 없었단다. 그래서 그때부터 수속을 하러 왔던 세관이나 관리들의 시달림을 당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수속은 끝났고 곧이어 항구에 접안을 할 수 있었다.
혼란이 모두 끝나자 그간의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서 잠을 자려다가 시내에 좋은 온천이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대강 옷을 챙겨 입고 상륙을 나가기로 했다. 짧게 머무는 항구이기에 오래간만에 푹 쉴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부두 정문에서 마약 운반 용의자로 몰렸다.
그곳에 근무하는 세관이 소지품 검사를 한다기에 손가방을 넘겼는데 그 속에서 마약이 나왔다며 현행범이 된 것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방으로 진정서를 넣었지만 소용이 없었고 중형을 선고받았다.
국내에 이 사연이 알려지자 국제 해사 단체까지 동원하며 각계각층에서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러던 도중 수감 중이던 그분이 갑자기 원인 불명으로 세상을 떠나 버려서 여러 사람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해외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를 모두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으니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해외로 나가면 이처럼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조심을 거듭하여 스스로를 지키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