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편하고 안락하게 한라산을 오를 줄 알았다. 난 비흡연자. 숨은 편하고 다리는 튼튼하니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 즈음은 마실 다니듯 할거 같았다. 그랬다. 한라산 백록담을 3시간 남짓 걸렸으니 수월하고 빠르게 올랐다. 백록담은 아름답고 날씨는 쨍하다. 10여 년 전 빗속에 올라 백록담은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또렷하다. 마치 나의 금연을 하얀 사슴 연못이 축하해 주는 것 같다.
문제는 하산이다. 성판악 등산로는 지리멸렬한 풍경이다. 오를 때는 바닥과 정상만 봤는데, 내릴 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똑같다. 누적된 피로와 근육 대미지로 다리가 풀린다. 발목에 힘이 빠지니 미끄러진다.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힘들다.
한라산은 힘들다. 흡연자든 비흡연자든 누구나 힘들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담배 피우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하산 후에도 흡연자는 볼 수 없다. 성판악 여기저기에 ‘금연’ 현수막이 널려있다. 여기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여기서 담배 피우는 놈은 없을 거다.
최고 심박이 202bpm까지 올랐다. 숨이 꼴딱꼴딱했다는 뜻이다. 진달래밭 대피소 닿기 전 바닥이 질퍽거리면서 굉장히 미끄러운 곳이 아닐까 싶다. 늘 미끄러운 곳이어서 그런지 계단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아니면 계단을 보수 중이거나.
담배를 끊고 체력에 자신감이 생겨 한라산에 도전했다. 생각보다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7시간 넘게 무사히 다녀온 게 대견하다. 아마 계속 담배를 피웠다면 오늘보다 훨씬 더 힘들었거나 완등하지 못했을 거다.
산행 후 숙소 근처에서 제주흑돼지와 한라산 소주를 마신다. 고기도 소주도 달달하다. 열량을 4000칼로리 이상 소모했으니 이 정도는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