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로 이사하기
트렁크 대신 옷장에서 정리된 옷을 꺼내 입고 싶었다. 공동욕실의 순서를 눈치 보지 않고,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천천히 씻고 싶었다. 왁자지껄한 게스트들의 파티에서 빠져나와 조용한 저녁을 보내고 싶었다.
공간의 부재
하루에 35달러. 하와이 물가치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는 인기가 높은 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기다 도미토리룸과 커플룸, 가족룸까지 한 공간에 있다 보니 끊임없이 게스트가 오고 갔다. 저녁에 처음 인사를 했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새로운 게스트로 방이 주인이 바뀌는 일도 허다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간인 만큼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온종일 밖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잠만 청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생각과 생활을 정리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사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와이에 도착했다. 2주 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면서 머물만한 집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단기 렌트가 가능한 집들을 찾아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현지에서 직접 알아보고 구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 그동안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집을 구하는 일을 쉽지 않았고, 나는 어느덧 하와이에서 두 번째 주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내 침대 맞은편 침대에 새로운 주인이 찾아왔다. 한국에서 광고 카피라이터였던 그녀의 방문 목적은 6개월 어학연수. 나와 다르게 수첩을 빼곡히 채운 메모에서 그녀의 계획과 준비성이 엿보였다. 일주일 차이로 하와이를 방문한 우리는 하와이를 찾은 목적도 성격도 달랐지만,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바로, 집! 우리는 함께 집을 보러 다니기로 했다.
먼저 단기 렌트 정보를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와이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카페인 하와이사랑부터 현지인들의 벼룩시장 또는 교차로와 같다는 크레이그리스트(Craiglist)까지. 우리가 예상하는 가격과 필요한 조건에 부합하는 집은 스튜디오로 불리는 원룸이거나, 콘도로 불리는 아파트에서 방을 하나 쉐어하는 형태였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입장 차이
사진으로 괜찮아 보이는 집을 발견하면 약속을 하고 직접 집을 보러 갔다. 하지만 실망하고 돌아 나오는 일이 대다수였다. 깨끗하고 좋은 집이라는 집주인의 설명과 한국에서 생활하다 온 우리가 생각하는 집의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전반적으로 하와이의 건물들은 지어진 지 오래됐기 때문에 대체로 집이 낡았다. 그리고 한국과는 다르게 보통 카펫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집주인들은 그 카펫의 소독 처리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새로운 세입자가 오더라도 진공청소기로 한 번 '쓱' 청소하면 새로운 세입자를 맞는 준비는 끝. 하지만 우리는 오래된 카펫에서 나오는 꿉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가격은 비쌌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집값과 가장 낮은 인건비를 가진 곳이 하와이라고 들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다 게스트하우스 주인 언니가 와이키키의 콘도에 새로운 렌탈하우스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전에 살던 사람들은 일반 가정집으로 사용했던 터라 손님들을 맞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했다. 렌탈하우스로 변신하기 위해 수리공이나 케이블 설치 기사가 방문하고, 새로운 가구를 들이고, 인테리어를 바꾸는 시간이 필요했다. 새 단장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렌탈하우스에서 머물기로 했다. 와이키키치곤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집세를 내고, 집주인 대신 렌탈하우스의 지킴이가 되었다. 수리공이 오면 마치 집주인처럼 방문 시간을 기다렸다 문을 열어주고,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꼼꼼히 들었다. 주인언니와 인테리어 소품을 사고 액자를 옮겨 달기도 했다. 라나이(베란다)를 가득 채운 화분에 물을 주며 꽃이 죽지 않게 보살피기도 했다.
완전히 셋팅 된 공간은 아니었지만, 내가 머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하와이에서 나만의 공간을 얻기 위해 누빈 발걸음만큼, 마음 졸였던 시간들도 축적되어 있었다. 호기롭게 한국을 떠났지만, 게스트하우스를 떠돌다 다시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과 조바심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지도.
매일 걸어서 바다를 갈 수 있는 위치는 내가 원하는 집의 제1의 조건이었다. 거기다 하와이스러운 느낌을 매일 느낄 수 있는 곳. 당연히 내가 원하는 장소는 와이키키였다. 거짓말처럼 와이키키는 우리 동네가 되었고, 우리 집이 생겼다.
와이키키 집의 위치는 정말 최고였다. 와이키키 비치의 메인인 듀크 동상에서 동물원 방면으로 한 블록 걸으면 맥도날드가 있다. 맥도날드 뒤편으로 다시 두 블록만 걸어가면 오후아 애비뉴가 있다. 그 거리에 와이키키 우리 집이 생겼다. 여유롭게 산책하듯 걸어도 10분, 자전거를 타고 5분이면 와이키키비치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와이키키로 이사한 첫날, 나는 떠돌던 마음과 시간을 비워내고 하와이 우리 집을 기념하며 맥주를 마셨다.
<하와이 로망일기, 와이키키 다이어리>
평범한 대한민국 30대가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떠났던 하와이 한량 생활기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하와이를 만나고 돌아온 85일간의 와이키키 다이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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