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h 국가: 체코 8th 여정: 프라하 (2017.4.8-4.11)
현재까지의 여정
D+30일(2017.4.8) 오스트리아 비엔나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많은 것이 불편해졌다. 버스 터미날에 8시 20분에 도착했다. 비엔나행 버스를 물으니, 가장 빠른 게 8시 45분이라고 했다. 급히 표를 끊고,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되어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매표소로 갔더니, 매표소 직원은 다짜고짜 소리친다. 우리는 버스 대행을 할 뿐이다, 버스 사정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버스표를 팔았잖아. 아, 몰라. 네 표는 "플렉스 버스" 주관이니, 거기로 가서 따져. (이 때부터는 화가 나서 그냥 우리말로 뭐라고 했다.) 너 그렇게 살지 마라. 너 지금 욕했지. 계속 이러면 경찰 부른다. 그래. 경찰 불러라. 나도 너희 고소한다. 한참을 싸우고 있었더니, 다른 직원이 플렉스 버스에 전화해서 관계자를 만나게 해줬다. 그리고 듣게 된 실상은, 출발시간이 10시 15분으로 변경되었다는 통보. 왜 시간 바뀐 것을 아무도 안 알려주나.
그래서 10시 20분에 겨우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는 2층 버스였고, 버스 안에 화장실도 있어서 나름 편리했다. 그런데 버스가 휴게실을 그냥 지나치기 시작했다. 아침에 급히 나오느라 아침을 못 챙겨 먹었고, 버스를 기다리느라, 또 매표소 직원과 싸우다 보니. 먹을 걸 전혀 챙기지 못했는데, 버스는 쉼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뭐, 운전자도 사람이니, 당연히 휴게소에서 쉴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이 버스에는 운전자가 두 명이었다. 버스가 국경을 넘어서 출입금 심를 받는 동안에 운전자들이 서로 교대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휴게소에 안 쉬겠구나. 자그레브부터, 슬로베니아 다시 오스트리아에 이르는 여정 동안 버스는 멈추지 않았고, 나는 너무 배가 고팠다. 풍경이 감탄이 나올 만큼 예쁜 것도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휴일이어서 차도 너무 막혔다. 그렇게 나는 버스 안에 자연스럽게 감금되었다가 오후 5시에나 풀려날 수 있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터미널 인근의 터키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했는데, 고기냄새와 향신료 냄새가 견디기 힘들었다. 최악이었다. 쉬기 위해 숙소에 돌아왔더니, 옆방의 단체로 온 친구들이 술판이 벌어졌다. 정말 시끄러웠다. 최악이다. 야경이라도 볼까하고 나왔더니, 지나가다가 마주친 술취한 젊은 애들 무리들이 혼자 있는 동양인인 내게 시비를 걸어왔다. 싸울 힘도 없어서, 그 자리를 피해 숙소로 돌아왔더니, 먹은 게 탈이났는지, 복통이 왔다. 비엔나는 낭만의 도시의 대명사라는데, 나의 비엔나 생활은 복통과 지독한 소음, 허탈감으로 점철되었다.
D+31일(2017.4.9)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밤새 앓아서 힘이 없고, 몸이 무겁다. 터미날로 향하여, 매표소 앞에서 잠시 고민에 빠진다. 곧장 체코의 프라하로 가서 쉴 것인가, 프라하로 가기 전에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로 갈 것인가. 오스트리아와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비엔나와 브라티슬라바는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의 수도로 유명하다. 70킬로미터가 안되니까... 서울과 천안 사이의 거리보다 가깝다고 보면 된다. 어차피 버스를 타면 되니, 브라티슬라바에 들렸다 가기로 결정했다.
9시 15분에 출발한 버스는 10시 20분 경에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국경을 지나면서 검문도 없었다. 정거장에 내려서 근처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따로 짐을 맡길 곳이 없어서, 큰짐을 모두 들고다니다 보니 지친다. 그때.. 코끼리버스같은 투어 차량이 있어서 그냥 올라탔다. 투어라고 하기에는 다소 밋밋한 움직임이었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브라티슬라바를 둘러볼 수 있었다. 막 화려하지는 않지만, 운치가 있는 동네였다
투어버스에서 내린 후, 혼자서 거리를 걷다가 한 식당 앞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다. 천사인줄 알았다. 우리가 떠올리는 금발의 미녀의 전형이었다. 그녀를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까, 식사를 하겠냐고 물어왔다. 나도 모르게 끄덕였고, 어느 순간 나는 식당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식당 종업원이었다. 메뉴를 주문하면서, 가까이서 본 그녀는 멀리서 봤을 때만큼 아름다웠다. 음식이 나왔고, 맛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식당의 매상은 이 누나가 다 올려주는 거 같았다. 참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식당으로 몰려왔다. 그러니 바쁜 그녀에게 차마 같이 사진을 찍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은 화질이 엉망인 중고 G패드이다. 휴대폰을 최대한 빨리 구해보리라. 다음 목적지인 프라하로 가기 위해 버스 정거장을 향하면서, 올 때와 다르게 컨디션이 부활했음을 깨달았다. 다 그녀 덕이다.
D+32일(2017.4.10) 체코 프라하
어제 프라하에 저녁 8시 30분에 도착했다. 휴대폰을 분실한 이후로는 전날 인터넷이 될 때, 다음 숙소의 주소를 적어 놓고, 주소가 적힌 주소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찾아가는 형태이다. 날이 밝을 때는 사람들도 경계심이 덜하지만, 밤이 되면, 길을 물어도 그냥 지나쳐간다. 그래서 프라하 숙소까지 찾아오느라 고생을 제법 했다. 그래도 젊은 친구들이 생각보다 길을 잘 알려준다. 대부분이 스마트폰이 있어서, 주소를 보여주면, 대략적인 위치와 가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9시 30분이 넘었다. 숙소는 아파트 형태를 도미토리 형식으로 개조한 곳인데, 마음에 든다. 편안함 잠자리여서 아주 푹 잠들었다.
그렇게 충분히 쉬고, 오전 10시에 프라하를 구경하러 출발했다. 프라하에서 2박을 하고, 11일 저녁에 프랑크프루트로 비행기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니 이틀간 충분히 둘러볼 시간이 있다. 공항에는 4시까지 갈 예정이기에, 24시간 교통권을 구매해서 오늘 4시부터 내일 4시까지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그전까지는 프라하를 계속 걸어다녔다. 휴대폰이 없으니, 그냥 계속해서 걸었다
그렇게 성당 2곳을 방문했고, 1곳에서는 미사를 함께 드렸다. 고난 주간이어서 그런지 평일에도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철저한 날라리가 되어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던 나인데, 여행하면서 예배나 미사에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 교회나 성당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안에 들어가서 20~30분씩 앉아 있다가 온다. 만약 그때, 예배나 미사가 진행되고 있으면, 그대로 참여까지 하고 나온다.
성당을 나와서 프라하를 관통하는 강을 찾아서 계속 걸었다. 물이 참으로 깨끗하지가 않았는데.. 이 더러운 물을 제법 낭만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한강은 정말 아름다운 강이다.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그리고 노래 소리에 이끌려 가게 된 것은 "존레논 벽"이었다. 어제 블로그에서 봤던 곳을 우연찮게 방문하게 되었다.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쪽 블럭의 벽면이 전위적인 낙서로 가득했고, 그것은 존 레논을 추도하는 내용들인듯 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벽 앞에서 '이메이진'을 부르고 있는 사람도 있고, 벽면의 글귀를 읽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죽어서도 기억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벽면의 낙서를 읽던 중, 한 글귀가 눈에 밝힌다.
"Don't sell your dreams."
사십춘기 방랑기 D+33일(2017.4.11) 프라하 둘째날
오늘은 프라하에서 오후 5시 35분에 비행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넘어가는 날이다. 나는 숙소에서 매우 과묵한 편이다. 아침이 되었을 때, 6인실 숙소에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내게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내게 말을 건냈던 말레이시아 친구는 '푸미'라는 이름의 30세 청년으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까지 잘하는 대단한 친구였다. 그리고 그 친구와 능숙하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던 분은 34세의 박민호 씨였다. 그렇게 그 두명의 조합에 나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가 서로의 페이스북을 교환해서 친구를 맺었는데, 친구를 신청하던 박민호씨가 불현듯 어떻게 승현이를 아느냐가 물었다. 그가 말한 사람은 하나고 기독교 동아리를 이끌어주시는 삼일교회 이승현 전도사님이었다. 민호씨는 이승현 전도사님의 신학대학원 동기였고, 서로 통성명을 하며 나는 여행 전에 선생이었음을 밝히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비행기 출발 전까지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박민호 전도사님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선교를 위해 치대를 다니고 계셨거, 7월 결혼 전에 마지막 여행이자, 선교 사명에 대한 다짐을 하고자 유럽에 계신 선교사님을 방문하시는 중이었다. 푸미는 말레이시아와 한국에서 30살까지 일을 하다가, 지금 진로를 고민하고자 3개월간 여행하기로 떠돌고 있는 나그네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2명과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삶을 이끌어가는 어떠한 방향에 대한 느낌을 묘하게 받았던 거 같다.
먼저 출발하는 두 명을 배웅하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다시 만나게 될까? 이제 독일로 떠난다. 그리고 몇시간 후면, 하나고 2기 제자인 전준, 문원영, 안상현을 만난다. 벌써부터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