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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Mar 05. 2017

[Part1] 취준생에게 필요한 것, 자기중심성.

[Part 1: 낙관적 운명론자, 취업준비생의 일기]

2013.11.15(수) / 회사를 떠나기 1162일 전.


Egocentrism, 자기중심주의. 인간의 발달과정에 Egocentrism은 두 번 나타난다고 한다. 영유아기에 한 번, 그리고 청소년기에 한 번.



영유아기의 자기중심적 사고는 타인이 자신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타난다. 가장 유명한 실험인 피아제의 '세 산 실험'이 그 예이다. 커다란 산 모형을 사이에 두고 아이와 인형이 마주 앉은 후에 아이에게 인형이 어떤 장면을 보고 있을지 물으면,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을 선택한다. 상대방의 시각이 자신과 다를 수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의 Egocentrism은 자의식 과잉이다. 자신이 겪는 모든 사건과 감정들이, 다른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특별한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가 겪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고 가장 행복한 일이기 때문에 자기를 영화 속 주인공처럼 생각하게 된다. 동네 슈퍼에만 나가려고 해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치장에 엄청난 신경을 쓰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중2병이다.




영유아기의  Egocentrism은 인지능력이 발달하면서 금방 사라지지만, 청소년기의 그것은 금세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사실 평생 사라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의 Egocentrism이 없다면 인간은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고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자신이 세상의 티끌만치도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걸 정확히 인식하고 나면 인생이 얼마나 재미없고 괴로울까. 그러니까, '그래도 나는 이러이러해서 조금 특별한 것 같아'라고 착각하고 자위하며 살아야 행복한 거다. 일종의 진통제처럼. 물론 그것이 과하면 주변의 비웃음을 사겠지만.




중고등학교 때 나는 내가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학창시절 내내 너무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내 꿈은 주로 외교관, 기자, CEO 같은 것들. 심지어 고등학교 때 가장 마지막으로 적어 놓은 내 꿈은 대통령이었다.


남들과는 아주 다른 특별한 인생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고, 동시에 비범(非凡)하게 살아야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 늘 '글로벌'타령을 했던 것도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뭘 해도 '글로벌'하지 않으면 패배자가 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대학에 오고 나서 나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취직을 준비하는 지금은 그 '평범한 삶'이라는 것조차도 만만치 않은 거구나, 감사해야 할 일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공부가 제일 쉬웠고 제일 재미있었고 또 열심히 했던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공부만 잘 하면 인생이 탄탄대로일 줄 알았는데 세상은 사실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은 그게 당연한 것임에도 나에겐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와는 반대로 '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가요?'라고 누군가에게 따져 묻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히 취직 준비를 하면서, 내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들이 도무지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동안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이 넘는 시절에, 무엇을 위해 그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공부를 했었는가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이 때 나를 구원해준 것이 바로 에고센트리즘이다. 내 앞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나의 인생을 좀 더 깊이있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반 착각, 반 믿음 같은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많은 충동과 욕구를 참아가며 '해야 하는 것'을 열심히 했던 경험, 그리고 그 노력에 대한 성과와 인정을 얻었던 성공 경험. 학교 공부 외에도 영어, 중국어, 피아노, 미술, 태권도 같은 것들을 몰입해서 배울 수 있었던 기회들, 그리고 이것들이 지금까지도 내 취미생활을 다채롭고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쓰며 길러진, 세상에 대해 고민하는 습관들. 이 사회의 구성원, 그 중에서도 소위 말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아주 최소한의 정의로움과 수치심과 책임감과 사명감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들.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얻었으니 나의 노력과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그것들이 겉으로 보기에 엄청난 성공이나 출세를 가져다 주지는 못하더라도 내면적으로 나를 남들보다 풍부하고 다채롭고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믿으며, 나는 오늘도 평범한 행복을 찾아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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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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