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자존감에 대하여
꿈에서 옷을 입고 있지 않을 때가 있다. 어딘가를 가고 있는데 나만 바지를 안 입은 것이다. 모두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저만치 걸어가는 데 나만 빨가벗고 있을 때 기분,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꿈에서도 수치심을 느낀다. 어떻게든 가리고 숨어야 할 것 같은 데 아무것도 못 하는 이 무기력을 어쩌면 좋을까.
이런 꿈을 자꾸 꾸는 이유는, 아마 남들보다 헐벗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내 몸 어딘가 콱 박여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씹다 버린 껌처럼 바닥에 달라붙은 자존감은 언제나 자신을 괴롭힌다.
내게 있어 자존감은 세상 해석기다.
다만 약간 고장 난 해석기.
종종 엄마 앞에서 자존감이 고장 나는 느낌을 받는다. 고생한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커서 그런가. 지금 내 모습을 엄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그렇게 덜컹거리는 해석기는 매번 오류를 낸다. 혼자만의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누가 잘 되었더라.
툭, 지나가는 말만 해도 내가 지금 못 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은 잘 되고 있니?
그 말은 너 그럴 줄 알았어. 로 해석해버린다.
게으른 나는 스스로가 창피해 자꾸만 자존감이 해석 오류를 일으킨다. 그럴 땐 말을 돌리거나 짜증을 냈다. 그렇게 거꾸로 매달려 뾰족하게 떨어질 날만 기다리는 고드름 같았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종종 집안이 떠나가라 울었고 가족이라는 집단으로 엮이는 것 자체도 싫다고 여겼다.
그날도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일 아닌 일로 엄마와 엄청난 신경전을 벌인 날.
나는 엄마의 행동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점점 내 안의 무언가 자꾸 치올라왔다. 참다못해 엄마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고 계속 따져 물었다. 왜 이렇게 나를 무시하냐고. 왜 그런 말을 하고 왜 상처를 주는지, 확답을 받아야 했다. 이해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감정의 문제였고 자존감의 문제였다. 밑도 끝도 없이 화가 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말 그대로 눈이 돌았다.
싸울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자식이면 그러면 안 된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그러면 안 된다. 가족은 그러면 안 된다. 네가 동생이니까 그러면 안 된다. 네가 어리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나는 그 말이 싫었다.
나는 가족이라서 모든 감정을 참는다는 말 자체가 이해가 안 되었다. 엄마는 엄마니까 나에게 상처 주는 게 당연하고 나는 자식이니까 무시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처럼 들려서 싫었다. 내가 어리기 때문에 무조건 내가 빌어야 한다는 말도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런 미쳐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나는 왜, 왜, 왜! 그럼 나이 든 사람들은 다 잘못을 저질러도 상관없는 일이냐고 왜 나만 참고 무시당해야 하냐고 따져 물었다.
엄마는 이제 그만 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날 나는 매번 이렇게 그냥 끝내야 하는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엄마가 딱 한 마디 했다.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하니까.
엄마는 지금 네가 이러는 거 다 이해할 거니까.
그러니까 너도 그만해.
순간, 심장이 출렁거리고 머리가 띵해졌다.
그때 알았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 혼자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사랑받고 있지 않다고 오해한 건 나의 자존감 해석기 오류라는 걸. 사랑하는 동안 더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면 먼저 나의 세상 해석기를 손볼 필요가 있다. 미쳐 돌보지 보지 못 한 자존감을 사랑으로 손질해야한다. 접히고 헤진 조각들을 천천히 이어 사랑을 완성하자. 자존감을 지킨다는 말은 이런 나라도 기어코 사랑하겠다는 다짐.
길가에 핀 꽃에 이유 없는 사랑스러움을 느끼듯 나와 세상을 사랑하자. 우리는 사랑받고 있고 당신은 사랑받는 사람이다. 그 행복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행복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은 사랑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클레멘타인
ㅈ. 자존감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