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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빗 May 12. 2016

5월이 오는 소리

대한민국 두아이 아빠되기

햇살이
언제부터 이렇게 눈부셨나
바람이 불면 옷깃을 여미기보다 풀어두게 되는 날씨,
시냇가 옆은 하나둘 푸르른 옷으로 갈아 입었다
옷통 잿빛의 겨울인줄 알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분홍,하늘색 파스텔 톤의 가벼운 외투가 보인다.
5월이다.
까만 늦겨울 잠바를 껴입은 난 오늘, 여전히 겨울의 끝에 서 있다.





정확히 1년 전,
계절의 여왕이라는 눈부신 5월의 그 어느날.


이아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들을 수 없기에 말을 할 수 없죠.




한 가족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꾼 그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는 의사가 참 매정했던 그날.
우리부부는 멍 한 상태로 조심스레 둘째녀석을 안고 돌아왔더랬다.


"딱 하루만 울고 더는 울지 말자"
우는 아내를 달래려는 나의 눈가도 이미 젖어있었다.
눈물이 나지만 울지 않겠다
가슴이 찢어지지만 절망 하지 않겠다
세상이 미워지지만 비관하지 않겠다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특별한 아이인만큼 특별하게 키우겠습니다"
선언하듯 가족들앞에 꺼내든 말이었다. 100일 상을 앞에두고 할머니 두분은 눈물을 참지 못하셨다.
받아들인다는 말은 싫었다.
특별한 너인만큼 특별하고 멋지게 키우겠노라.
비록 넌 한가지를 갖지못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걸 가진 사랑 가득한 아이로 키울거라 선언아닌 선언을 했다


나름 큰 도시지만, 우린 무조건 서울로 향했다. 인맥에 인맥을 동원해 강북삼성병원,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인공와우 수술이 해답으로 보였다. 귀만 들으면 평범한 아이들과 똑같을 거라 믿었다.

"좀 더 검사가 필요하겠습니다"
이비인후과에서 신경과로, 소아청소년학과에서 유전학과로.
발을 내릴때 마다 빠져드는 늪처럼,
대학병원은 우릴 놓아주지 않았다.
애매한 결과차트에는 알수없는 용어만 가득했다.
수술을 할수는 있으나, 말을 할수 있을지는 미지수란다.

반복되는 검사에 갓난쟁이는 매번 괴로운 마취약을 먹어야 했다
전문의는 자기분야만 간단히 알려주고 다른 과로 넘겼다. 문제가 있으나 소견은 없었다.
대학병원은 예약도 쉽지않아 두세달 기다리는건 대수롭지도 않았다.

가야하는 과는 갈때마다 늘었다. 언어치료,재활치료,작업치료,운동치료. 돌쟁이 둘째를 데리고 아내는 일주일중 5일을 병원에 간다.

영화 '효자동이발사' 중,




그렇게 1년이 가고, 오늘, 5월이다.

다시 실록은 옷을 갈아입고, 깨어나고 꽃을 피워낸다.
나와 둘째에겐 봄도, 푸르름도, 깨워질것도 없는 무음(無音)의 시간. 그 5월의 가운데에 있다.


희망과 긍정을 믿는다, 여전히.
특별하게 키우겠다던 그 선언은 역시 유효하다.
그렇다고 지치지 않고 힘들지 않겠는가.


문득, 1년전 그날의 메모를 다시 읽어본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자.
그냥 똑같이 아빠는 너와 너희누나를 위한 세상을 열 것이고, 너희는 그 안에서 마음껏 뛰면돼.
너에겐 조금 더 특별하고, 조금 더 넓은 세상을 주고 싶어졌단 정도.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와도
아빠는 커다란 산처럼, 드넓은 바다처럼,
너희의 보금자리가 될게

받아들인다는 말은 싫다
특별한 너인만큼 특별하고 멋지게 키우겠다.
비록 넌 한가지를 갖지못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다른걸 가진, 사랑이 가득한 아이로 키울게.


- 봄을 기다리는 5월의 어느날, 아빠가 -




윗 글이 'MBC라디오 여성시대' 사연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많은 분들에게 공감이 되길 바라며, 방송에 소개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양희은 선생님'의 목소리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5/24화: 1,2부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 입니다"  14:34 ~  20:08 내용입니다.


- 대한민국 두아이 아빠의 육아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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