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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빗 Jun 21. 2016

처음처럼

대한민국 두아이 아빠되기

바야흐로 청첩장의 계절입니다. 친구보다는 후배님들의 결혼식이 많지만 오랜만에 지인들이 모이는 자리인만큼, 초대받은 자리는 꼭 가려고 하는 편입니다.


주말의 강남, 네 식구가 모두 움직이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다고 화창한 주말에 두 아이를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혼자 가기는 더욱 미안합니다.


이럴땐, 주말 결혼식을,
큰아이와 둘이 가는 나들이로 바꿔 봅니다.


모처럼 시내 데이트를 가는 거죠. 보통 낮에 있는 예식시간 앞,뒤 시간을 이용해 큰아이와 시내에 가볼만한 곳을 찾아 봅니다. 교보타워에서 아이와 같이 책도 보고 예쁜 문구들을 보는것도 딸아이에겐 좋은 추억이 됩니다.

예식장 근처에 공원이나 핫플레이스도 추천합니다. 서울에는 서울숲, 경북궁, 광화문광장, 청계천 등 다양하지요. 이제 큰아이는 카페에서도 제법 잘 앉아있기에, 삼청동이나 가로수길을 같이 다녀도 전혀 어색하지 않죠.

아이와 가볼만한곳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론, 아이를 먹이고 챙기는게 결코 우아한 식사는 아닙니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커피 한잔에도 아이 챙기기가 우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장을 차려입고 간다면 오히려 낭패를 볼지도 모릅니다. 결혼식인 만큼 깔끔한 비지니스 캐쥬얼 정도가 좋습니다. 언제든 들쳐매고 화장실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럼에도, 지인의 결혼식을 참석하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잊히기 쉬운 저의 결혼식을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기나 후배들의 결혼식을 보면, 자연스레 부부가 되기로 서약한 저의 '첫 날'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신혼집 이사가 늦어져 결혼식 전날 밤 겨우 마친 후, 뜬눈으로 밤을 새고 새벽녘 헤어샵으로 달려갔던, 그 하루가 촘촘히 되살아 납니다.


"신랑 입장!"

그 짧은 한마디에 시작되는 인생 2막에는, 눈물과 웃음을 쏙 빼놓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펼쳐 질 테지요. 바로 옆의 그녀(그)를 통해 곱절로 풍성하게 말입니다. 축가를 부르는 신랑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립니다. 지금 앞에 서있는 후배가 얼마나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지, 그 날의 저를 생각해보면 박수가 저절로 나오네요.



얼마 전 처음으로 '축사' 부탁을 받았었습니다. 외국영화에서나 보던 신랑을 위한 축사, 다소 부담이 있었지만 워낙 가까운 친구의 부탁이기에 흔쾌히 수락했었죠.

예식의 2부 차례, 어수선한 식사 중, 친구 부부를 바라보며 닭살돋게 낭독했더랬죠.


두 사람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자리에, 축사를 맡겨주셔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두분 결혼 준비 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촬영한 웨딩 사진에, 손수 준비한 청첩장까지,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열심히 준비했을 겁니다.

놀라지 마세요.
이제 시작입니다..!!

(중략)
친구 민철(가명)군에게 당부하고 싶은것은, 아내의 말을 잘 듣는것이,
가정의 평화요, 인생 성공의 길이며,
생명 연장의 길입니다.

음주가무 및 온갖 비건설적인(?) 것들은 민철이가 선배이지만,
결혼과 육아에서만큼은 선배인 제가 감히 두분께, 당부아닌 당부를 건냅니다.

먼저, 두분만이 두사람 인생의 주인공임을 잊지마세요.
TV드라마,영화 모두 우리 주위 이야기로 만들죠.
두분의 연애 이야기도 드라마로 만들면 '태양의 후예' 저리가라하는 한편이 나올것입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저기.. 송중기,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진심으로 맞을뻔했습니다)
내 옆에 이사람이, 그리고 그사람과 내가, 지금 함께 쓰는 드라마의 주인공임을 항상 잊지 않길 바랍니다.

다음으로,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가 아닙니다.
살면서 한번도 안싸운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돌아올 수 없고, 때론 깊은 상처를 남겨, 두고두고 아프게 합니다. 감정적으로 말하지말고 다시 한번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심한말은 서로 하지 않길 당부드립니다.

끝으로, 두 사람을 닮은 예쁜 아이를 낳길 바랍니다.
제가 살면서 유일하게 잘한 일이 있다면, 저희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일입니다.
아이 낳아 기르기 참 힘든 대한민국 입니다. 제 주위에도 아이 없이 살자고 다짐한 부부가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히,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았다면 아직 인생의 후반전은 치르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때론 치열하고 고통스럽지만, 인생을 완성시킬 수 있는 후반전에 전념해보시길 추천합니다.

다시한번 두분 결혼 축하드립니다!
제 소중한 친구인 민철군을 막! 다뤄주시길 부탁드리면서 이만 축사를 마치겠습니다.


격없이 가까운 친구의 결혼이었기에, 읽을 때는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막상 옮겨 적으니 오그라드네요.

친구 부부의 결혼식을 제가 마무리하게 되어 고맙고 송구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친구에게 건넨 축사는 사실 저 자신에게 건낸 말이기도 했으니까요.




부족하지만 솔직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밝고 명랑한
'가을 운동회'같은 결혼식.


저희 부부에게 결혼식은 서로 잘난 곳을 자랑해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부족한 두 사람이 조금씩 채워가겠노라 약속하는 '과정'이 되길 바랬었습니다.


긴장의 연속인 예식을 마치고, 겨우 호텔방에 마주 앉저희 부부는 몇가지 약속들을 했었죠. 서로에게 꼭 지킬 것을 스스로 적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2번이상 칭찬하기. 2주에 하루는 자유시간 주기. 싸웠을 때 무조건 먼저 사과하기...'

작은 글씨로 적은 종이를 건낸 그날의 약속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처음처럼 말이죠.

지금봐도 긴장되던 그 날의 기억.


오늘도 두 아이와 전쟁을 치르고 있을 아내를 보면 대견하고 또 미안합니다. 사실 처음 약속한 그날처럼 인생의 후반전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두 손 꼭 잡아주었기에, 꼭 안아주었기에 폭풍같은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해주는 아내에게, 너무나도 고맙고 또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느 가족이든, 아내(또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무어라 다 말할 수 있을까요.


생각컨데, 네 식구와 함께 한 가정을 꾸리며 만들어가는 이 모든 이야기도,
결국 한명의 그녀(그)를 만나면서 시작된 이야기니까요.



아빠와의 도심 데이트에 큰아이는 조금 피곤했나봅니다. 돌아오는 차에서 잠에 빠져들었네요. 집에 가는 길엔 아내가 애정하는 초코케익 한조각을 꼬옥 사들고 가야겠습니다. 어린 그녀에게 첫 데이트를 신청했던 그 처음처럼 말이죠.




- 대한민국 두아이 아빠의 육아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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