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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빗 Jul 12. 2016

느리게 걷기

대한민국 두아이 아빠되기

며칠 전, 아침에 눈을 떠 몸을 일으키려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깜짝놀랐습니다.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를 겨우 이끌고 찾은 병원에선 '디스크' 라고 진단을 받았드랬죠.

디스크가 왠 말인가요..

두아이 부모에겐 아픈것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법인데.. 디스크라니요,

"완치가 없는 병이라 계속 관리 하셔야 됩니다"

뭐 좋은 말이라고 돌아서 나가는 등 뒤로 의사가 한마디 덧븥이네요.


아이들 목마 태우며 놀아주는게 저에겐 큰 행복인데요, 당분간 어려울 듯 합니다. 무엇보다 혼자 두 아이 보느라 고군분투 하는 아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큰아이는 아빠가 아픈걸 아는지 안아달라 업어달라 떼쓰지 않네요. 대신 침대에 누워있는 저의 옆에 한아름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 합니다. 이렇게라도 아빠를 찾아주니 고맙긴 한데요, 평소 두,세배의 책을 읽어주니 목이 쉴 지경이네요.


통증이 시작된 그 날부터, 허리 보호대와 함께 엉거주춤 느릿느릿 걷게 됐습니다. 주사도 맞고 침도 맞으며 부지런히 치료 중이지만 여전히 느려진 걸음걸이는 어색합니다.


본의 아니게, 이젠 무조건 바른 자세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급히 뛰어가던 길도 느리게 걷게 되었죠. 과식, 과음, 과도한 모든 것들은 자제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날 아침 이후로 말입니다.






얼마 전 가까운 동기녀석이 장난처럼 건넵니다.

"넌 무슨 중학교 담임샘 같은 정직한 소리만 하냐"


그 날은 웃으며 받아 넘겼지만,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저는 꽤나 바른(?) 사나이가 되었습니다.

대학로 연극 무대위를 광인(狂人)처럼 뛰어 다녔던 저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가끔 크게 변한 제 모습에 의아함과 격려를 같이 보내곤 합니다.


누구보다 바삐 달렸습니다. 

미친듯이 뛰지 않은 하루는,
젊음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 하는 직장에 빠르게 자리 잡았고, 또 빠르게 나왔습니다. 젊은 나이에 나만의 일도 해보았고, 큰 실패도 맛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보기도 했고, 그들에게 나의 생각을 전파하기도 했었습니다.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안된다'고 하는 말은 '조금 더' 뛰어보지 않은 이들이 읆조리는 '푸념'정도로 들렸습니다. 조언을 구했던 후배에게 때론 독설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잘난것 하나 없이 급하고 욕심많았던 그 사내는, 이제 없습니다.

특별한 둘째 아이를 만난, 바로 그날 이후로 말입니다.



어쩌면 조금 재미없는 '아재'가 된 걸지도 모릅니다. 여기 브런치에 연재하는 육아일기도 속된 말로 '진지 빠는' 이야기에 불과 할지도 모르죠. 장애아동의 부모가 아니면 공유하기 힘든 내용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세상이, 이 사회가 조금은 더 느려지길 바래봅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듣고, 조금 느리게 걷고, 조금 느리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아이를 위해, 부족한 아빠는 하루 하루 느리게 살아보려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내 옆자리의 아픈이를 배려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뛰어가느라 놓쳤던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손내밀 수 있길 바랍니다. 

승리와 실력만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꾸준한 모습에도 박수 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장애를 가진 조금 부족한 이도 이세상이 살만한 곳이라고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도 이 사회에 함께 발맞춰 갈 수 있길 바랍니다.






넌 언제쯤 '사람'같이 살거냐고 차갑게 물었다.
'사람'이다, 어떻게 살아도.
자신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고 틀렸다 하지 마라.
오히려 나와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은,
참 어리석은 생각이다.

내 아이가 어떤 인생을 살아도 응원하겠다.
꼭 그러겠다 다짐한다.
이건 정말 10000번은 다짐해야 겨우 해낼 것 같다.

  - 아이를 위한 아빠의 일기 中 -


나와 다른 인생을 걸을 수 밖에 없는 특별한 아이를 위해,

여전히 느릿한 걸음을 옮기며 또 하루 다짐합니다. 

"너의 인생을, 너만의 속도를 항상 응원하겠다!"





- 대한민국 두아이 아빠의 육아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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