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니 Jul 23. 2018

한번 사는 인생, 오히려 남자로 살아봤으면

퇴사하고 다시 글을 씁니다 - #8. 남자는 불편해  

남자들에게는 20대 때 다녀온 ‘군대’라는 소재가 시간이 지나서 어제 다녀온 일처럼 생생하듯, 여자들에게는 ‘출산’이라는 경험이 비슷한 이야기 소재가 된다. 임신 10개월에 접어들면서 의료진은 가방에 산모수첩, 검사결과지를 꼭 챙겨다니라고 말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가정 아래 말이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일은 남과 남이 만나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하나가 되는 과정과 다른 느낌이다. 결혼 역시 처음 겪는 일이라 쉽지 않지만 출산 후 육아 입문 역시 새로운 관문이 열리는 기분이다.      


주말에는 지인에게 카시트와 유모차를 물려받으려고 집에 초대를 받았다. 우연히 베이비샤워(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나 갓 태어난 신생아를 축하하기 위한 행사)처럼 무더위에 한 상을 차려서 집밥을 먹었다. 밥과 과일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월요일에는 출근할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서둘러 헤어졌다. 이야기하면서 여자의 임신은 성경의 하와 때문에 겪는 고통이라는 말이 나왔다.      


‘남자는 불편해’는 제목과 상반되게 읽고 난 독자 입장에서 그렇게 불편하지 않게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전형으로 표현된 ‘디폴트 맨’으로 살면서 약간의 불편함을 과장되게 표현해서 ‘얼마나 힘들게 사는데’라고 느껴졌다. 


각 챕터에서 구구절절 왜 불편한지 소재별로 정리했지만 공감이 크게 되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로 사는 일이 남자보다 더 불편한 게 훨씬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공공장소에 여자화장실 수가 충분한 경우는 매우 드문 이유가 건축가가 남자라는 이유라고 언급한다. 남자가 만들어서 여자가 얼마나 불편함을 겪는지 명절 때 휴게소를 들릴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


여자들은 늘 하는 청소에 관해서도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남자들에게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그냥 대걸레를 들고 청소를 시작하면 된다고 해서 약간 의아했다. 남자가 페미니스트가 되는 길은 쉬워 보이고 여자가 페미니스트 길을 걷는 건 온갖 혐오와 욕설을 들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젠더의 개념을 접근할 때 수행이며 학습된 것으로 정리한다. 학습된 개념치곤 여성에겐 불리하다. 정의는 쉽게 내리지만 현실에서 적용하기까진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남자가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관점은 여성들에겐 늘 있는 일처럼 당연한데, 그것이 힘들다고 말하니까 공감이 가질 않았다.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을 대하는 부분에서도 “진짜 남자라는 믿음이 너무 깊이 박혀 있는 나머지 남자들은 그 일에 목숨을 건다”라고 했는데, 그런 남자들과 살아가는 여성들은 더 발버둥 치는 세상이라는 현실을 눈 가리고 아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들이 책임감에  목숨을 걸 때, 온갖 가사노동은 여성에게 돌리는 모순은 누가 해결해줄까.      


21세기에 살아가는데 18,19세기, 조선시대의 성 역할대로 아직도 생활한다는 생각이 든다. 젠더를 대하는 관점도 새롭게 바뀔 수 있을까. 바뀌려면 남자가 이래서 불편하다고 주장하기 전에 남녀차별의 문제부터 제대로 짚어나갔으면 싶다.       


밑줄 그은 문장 



1. 공공장소에 여자화장실 수가 충분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왜 그럴까? 건축가들이 거의 다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설계자들은 대부분 남자였고 이들은 자신을 사용자로 상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형적인 남성의 방식에 따르면 이는 곧 평균적인 사용자, 특히 그 사용자가 여성일 경우 그들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2. 저널리스트 헬렌 루이스는 '가디언'에 쓴 글에서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들에게 아주 간단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냥 대걸레를 들고 청소를 시작하면 된다.


3. 근본적으로 젠더란 우리가 수행하는(perform)것이다. 이 생각을 쉽게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젠더는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란 느낌이 든다. 어떻게 젠더가 학습될 수 있단 말인가? 수행이란 단어는 성 역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며 고정되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남성성과 여성성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평생 학습하며 반복해온 사회적 행동이다... 그래서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특징의 일부는 타고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가 젠더로 여기는 것들 대부분은 학습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될 무렵이면 우리는 너무 어려움 없이 남자 또는 여자로 통할 수 있도록 젠더를 수행하는 완벽한 연기자들이 되어 있다.


4. 많은 구식 남성 의복에는 '전통적'이거나 '적절'하거나 '본질적'이라는 느낌이 내재되어 있어서, 옷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역할에 맞춰 만든 직물에 더 가깝다...어렸을 때 나는 남자들은 그냥 남자인 반면, 여자들은 여자가 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얼마나 틀린 것일까?


5. 군살 하나 없는 근육질 몸을 갖고 싶다는 욕망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남자들은 살찐 것은 여성적인 것, 관능적인 것, 자제력 부족과 같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탄탄한 몸은 내면세계와 외부세게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이 존재한다.


6.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은 여자아이들의 감정과는 뭔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문화에 푹 절어서 자라난다. 그러나 내 생각에 감정의 복잡성을 이렇게 과소평가하는 것은 남성성의 양상 중에서도 가장 시급히 고쳐야 할 문제다. 남자들은 폭력과 성과와 권력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 이런 변화는 먼저 그들의 감정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남자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감정의 공간을 더 넓혀주는 것이다.


7.  스스로 모든 걸 책임질 수 있어야 진짜 남자라는 믿음이 너무 깊이 박혀 있는 나머지 남자들은 그 일에 목숨을 건다.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 자살하는 것만도 못할 정도로 끔찍하게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책에 대한 짧은 총평


남자가 무엇이 불편한지 궁금하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괜찮...잘 읽히지 않는다. 진짜 힘들게 읽은 책. 젠더 개념은 어려워.


감응의 글쓰기 12기에서 읽은 책 그리고 서평 리스트]

9.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8. [남자는 불편해] 한번 사는 인생, 오히려 남자로 살아봤으면

7. [딸에 대하여]엄마는 딸에게 늘 좋은 사람이고 싶다

6. [핸드 투 마우스] 나는 정말 가난에서 예외인가?

5. [혼자 가는 먼 집]시, 잘 살고 싶어서 꺼내 읽어요

4. [차별감정의 철학] 나는 차별 앞에 가해자였다가 피해자였다

3. [내 아픔이 길이 된다면] 내 몸이 지옥같을 때

2. [나의 두 사람] 나에게 부모님은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하고 전 직장동료를 만났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