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요즘은 조깅하기 아주 좋은 날이다. 저녁이면 그렇게 덥지도 않고 달리고 있으면 땀이 뻘뻘 나지만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가 덮치지 않아서 땀은 빨리 마른다. 오전에 바닷가에서 햇빛을 받으며 며칠 책을 좀 읽었더니 몸에서 태양의 냄새가 날 만큼 탔다. 여름에는 피부가 좀 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좀 더 멋들어져 보인다.
조깅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올렸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885
사람들은 어떻게 매일 같은 곳을 달리는 것에 지겹지도 않냐고 하는데 조깅을 해보면 그런 말이 안 나올 텐데 아쉽다. 매일 같은 곳을 조깅을 해도 매일 다른 모습이다. 매일 하늘이 다르고, 구름이 다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다르고 낚시꾼들이 다르고, 심지어는 새소리도 다르다. 그리고 그것들을 폰이 있으니 기록을 할 수 있다.
나는 인스타그램 3개의 계정을 가지고 하는데, 하나는 짤막한 영화 리뷰만, 하나는 하루키의 이야기만, 하나는 조깅을 하면서 보는 다른 매일의 풍경을 올린다. 다 인기는 없다. 그래도 기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으니 조깅을 하다가 눈에 띄는 것들은 차곡차곡 사진으로 담고 메모를 해둔다. 나는 단점투성이로 똘똘 뭉쳤지만 그나마 메모하는 습관은 학창 시절부터 죽 해온 것 같다.
조깅을 하면서 지겹지 않은 이유 또 하나는 일주일은 강북을, 일주일은 강남을, 그리고 일주일은 강북의 좌측으로 죽, 일주일은 강북의 우측으로 죽, 또 일주일은 강남의 좌측으로, 또 일주일은 강남의 우측으로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린다. 또 다른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에도 적었지만 예전에는 여름이면 두 시간을 넘게 달렸는데 이제는 무리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은 30킬로미터를 달리며 걸으며 그렇게 보냈는데 이젠 추억의 조깅이 되었다.
강남으로 가서 우측으로 달리면 무지개다리가 나온다. 무지개다리라고 이름이 붙은 건 밤이 되면 무지갯빛으로 빛이 알록달록하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예쁜데 다리 위에 있으면 그것을 알 수 없다. 아마 달이나 화성 같을지도 모른다. 멀리서 보니 달이 아름다운 것이지 막상 달에 도착하면 삭막도 이런 삭막이 없다고 할 정도일 것이다.
다리를 건너 죽 달리면 지난번에 말했던, 까마귀 떼가 엄청나게 있는 숲이 나온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560
겨울에서 봄의 길목 저녁 시간에 이곳에 조깅을 해서 오면 공포스러운, 어마 무시하게 멋진 까마귀 떼의 비행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새가 기가 막힐 정도로 많다. 그래서 이곳을 나라에서 새에 관해서 무엇으로 지정을 한 것으로 아는데 그것보다 여름에 저 숲, 앞의 조깅코스로 달리면 새똥 냄새가, 닭장에서 나는 닭똥의, 그 냄새의 백만 배 강한 새똥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냄새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냄새만큼 시끄러운 새들의 소리가 숲에서 난다. 사람들이 없고 혼자서 달리라면 손을 저을 것이다.
그런데 잘 보면 나무들이 다 한 방향으로 쏠려있다. 쏠려 있는 방향은 북서쪽이라 태양도 없는데 어째서 나무들이 다 저 방향으로 쏠려 있을까.
이제 칠월이 되었지만 유월의 하늘은 이랬다. 본격적인 여름이면 이런 하늘은 잘 볼 수 없다. 습도가 높고 가스층이 두터워 뿌연 하늘이거나 먼지가 가득하고 무더운 하늘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해가 달에게 하루를 반납하는 개늑시에는 미칠 듯 타오르는 노을을 볼 수 있다. 이것 역시 매일 밖으로 나와서 조깅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조깅을 할 때에는 쇼트가 좋다. 이건 좀 웃기지만 긴 트레이닝보다 짧은 운동복이 좋은데, 겨울에도 그렇다. 그래서 겨울에 긴 운동복을 입고 달리는 것보다 쇼트 안에 레깅스를 입고 달리는 게 훨씬 잘 달려진다. 웃기다고 말한 건 기능적인 면보다는 그저 쇼트가 달리기에 좋다는 느낌 때문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겨울에는 어쨌거나 밖에서 조깅을 하는 자체가 힘든 일이다. 미친 짓이기도 하다. 겨울 조깅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허, 하는 말만 나온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497
트래드 밀보다 야외에서의 조깅이 (더 나은 점이 아니라) 재미있는 점은 변수가 많다. 조깅을 하다가 중간중간 몸을 푸는 곳이 있다. 운동기구들이 있고 동네 어르신들이 어슬렁 쉬엄쉬엄 운동을 하면서 저녁이 되면 우르르 나와있다. 조깅을 매일 하지만 매일 비슷한 속력으로 달리는, 비슷한 컨디션이지는 않다. 어떤 날은 몹시 잘 달리는 경우가 있고, 어떤 날은 다리가 전혀 달리기 싫어하고, 어떤 날은 말처럼 달리기를 바라기도 한다. 인간의 몸이라는 게 매일 다르고 그럴 때마다 신체에 고통을 주고 그 고통을 느끼면 기분이 꽤 나아진다. 요컨대 요가처럼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려가며 몸을 늘린다던가, 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얼굴처럼 울그락불그락하게 되어가면서 근력 운동을 좀 하면 신체에 기분 좋은 고통이 온다. 매일 그런 고통을 조금씩 느끼면 꽤 기분이 상쾌하다.
그렇게 몸을 푸는 곳이 강변의 조깅코스에서 군데군데 있다. 며칠 전에는 30분 정도 몸을 풀고 가야지 하며 신나게 몸을 풀고 있었다. 관절을 꺾고, 팔 굽혀 펴기나 이름은 모르겠지만 팔운동을 하고 다리를 풀고. 그런 루틴의 반복을 몇 번을 했다. 그러는 동안 동네 어르신들이 어슬렁어슬렁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한 아버님이 나를 유심히 보더니 자신이 군대 있을 때 나처럼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 음 그냥 무시하고 한 번 웃고는 말면 그만인데 아버님의 이야기를 받아줬다. 아버님은 신이 나셨다. 자유당 시대부터 해서 자신이 살아온 70 평생의 인생을 나에게 와르르 이야기를 했다.
이게 듣기 싫어하는 표를 상대방이 내면 아버님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내가 그만,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처럼 맞장구를 치며 계속 받아들인 것이다. 아버님은 여기 구청장이 자신의 후배인데 어느 날 술집에서 마주쳤는데 큰 소리로 행정업무를 못해서 나무랐다고 자랑을 했다. 속으로 흥, 아버님도 참 그런 거짓말을 하하하. 하며 말았지만 듣고 있으면 꽤나 그럴싸하게 들린다. 아버님은 뭐랄까 마치 변두리의 어두운 곳을 작업하는 일을 평생 해 온 것처럼 행색이 그렇게 편안하게 보이지 않았다. 햇빛에 오래도록 그을려서 피부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검었다. 더운 나라의 사람 같았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면 아는 것은 많아서 이 근처의 지역개발이라든가, 도시가 어느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고 어떤 사람을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주 일목요연하게 말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빠져서 들은 이야기는 백신을 맞고 후유증으로 새벽 2시에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혼자서(아버님은 혼자서 산다) 119에 연락을 해서 응급실에 실려 간 이야기였다. 119에 전화를 걸고 정신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 종합병원의 복도에 칸막이가 쳐져 있고 누워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과정을 세세하게 말해주었다. 병원에서 아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아들은 제주도에 있어서 바로 올 수 없었다. 아들의 자랑을 아버님이 잠시 했는데 아들은 중국과 미국에서 유학을 했고 중국 유학을 했을 당시 같이 공부한 친구와 함께 제주도에서 어떤 사업을 한다는 거였다. 아버님의 모든 이야기를 믿을 수는 없지만 백신을 맞고 난 후유증에 관한 이야기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어머니도 2차 접종까지 데리고 가서 맞았는데 1차 때에 후유증이 심해서 고생을 했다. 그래서 2차 때에 엄청 준비를 하고 백신을 맞고 하루 동안을 조마조마하게 있었다. 다행히도 1차 때만큼 심각하게 아프지 않았는데 그 비슷한 증세를 아버님이 말했고 그게 심해져서 병원에 실려갔다. 그래도 119에 전화도 하고 아버님에게 대단하다고 했다.
아버님은 뭐랄까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절실하게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대체로 모든 아버님들이 그런 것 같다. 아니 그렇다. 아마도 내 편이 없다고 느껴서 외로울지도 모른다. 그럴 때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진지하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을지도 모른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다 보면 아파트 경로당 앞 모임 장소에는 늘 아버님들이 앉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요즘 해방 타운이 인기인데,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왜 혼자이기를 바랄까, 같은 것이 화두다. 그건 이런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집에서 편안하게 쉬기를 늘 바란다. 집이 있어야 하고 집이 아늑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집이 인생의 최고의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집을 마음 놓고 타인에게 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성공했다고 우리는 늘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편안한 집이 있음에도 일주일만 집에 있으면 집을 뛰쳐나가고 싶어 한다. 여행을 가서 집보다 떨어지는, 집이라 할 수 없는 곳에서 잠을 자고 욕을 하면서도 집을 떠나고 싶어 한다. 그것과 비슷한다. 다시 돌아온 집, 다시 돌아온 내 가족. 사랑이라는 감정은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지만 외면한다. 자꾸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온다. 사랑하면서 왜 그래? 같은 말들. 사랑하니까 그러지. 같은 대답.
그래서 인간은 알 수 없다. 어떻든 그날은 그 아버님의 이야기를 듣느라 거기서 꼬박 한 시간을 있었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조깅을 하다 보면 그런 경우를 왕왕 만난다. 어떻든 요즘은 조깅하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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