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를 건네도 집을 떠나는 분의 마음을 다독일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젯밤에는 부러 삼청동을 찾아 부디 무사히 이사를 잘 하시기를, 괜스레 무리하시거나 마음 상하시는 일 없으시기를 빌어드렸다.
그리고 오늘이 삼청동 어르신의 이사날이다.
아침부터 눈이 내려 소복이 쌓였는데, 집이 완전히 비워진다는 사실에 그저 설레는 내 마음과 다르게, 이사를 나가시는 분은 짐 나르기도 어렵고 길도 미끄러워 적잖게 고생을 하셨으리라. 분명 기쁜 날임에도 마음대로 기뻐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사가 모두 끝났을 밤에는 집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삼청동을 다시 찾았는데, 작년 설에 첫인사를 했으니, 근 1년 만에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공간에 발을 들인 셈이다.
여든 살 먹은 집.
엄마에서 아들로 그 주인이 바뀌고, 여러 세입자가 들었다 나고, 이제는 생판 모르는 부부가 텅 빈 자신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오밤중에 찾아왔으니 아마 낡은 집 입장에서는 우선 놀랐을 테고, 어쩌면 반갑기도 했으려나.
길고 긴 시간 동안 품 안에 조용히 담아왔던 많은 삶과 마찬가지로, 부디 우리 가족의 삶도 단단하게 또 소담하게 담아주길 바라며, 그렇게 눈 내린 뒤의 새파란 겨울 하늘 밑에서 집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2022.01.14. 세 번째 실시설계(인테리어) 미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