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에 태어나 19세기말 20세기 초,
세기의 전환기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는,
주로 인간과 사회를 고찰하는 짧은 소설들을 썼다.
그중 <사랑에 관하여>는 수의사 이반 이바니치와 김나지움 교사 부르킨이 여행 중 방문한 알료힌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화를 다룬다.
창밖의 잿빛 하늘과 비에 젖은 나무들(191쪽)을 바라보면서 이들은,
작달막한 요리사 니카노르가 차린
아주 맛있는 고기가 든 빵과 가재 요리, 양고기 커틀릿
(189쪽)이 올라간 풍성한 아침밥상을 받는다.
괴팍한 요리사 니카노르와 어여쁘고 매력적인 하녀의 사랑은 지금 결혼 문제에 관한 서로 간의 이견으로 벽에 부딪혀 있고.
이것이 단초가 되어 방문객과 주인은 아침밥상에서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랑의 불가사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모스크바에서 대학을 다닌 '서재형 인간' 알료힌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교육비를 포함하는 부친의 막대한 채무를 갚기 위해 집안의 영지로 내려와 직접 농사짓기를 결심한다.
농사라는 육체적 노동과 정신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기대했지만,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빠듯한 재정 형편에 쪼들리면서 농부로서의 현실은 나날이 각박해질 뿐이었으니.
잠깐잠깐의 사회활동과 약간의 사교로 그는 도시적인 문화와 정신활동에 대한 갈증을 달래던 중,
지인의 부인과 사랑하게 되었고.
주저주저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던 조마조마했던 두 사람의 사랑은 서로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렇게 사랑을 끝내고 혼자 늙어버린 알료힌은 방문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 그제야 우리의 사랑을 방해한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사소하고 기만적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사랑할 때, 그리고 그 사랑을 생각할 때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이나 불행, 선행이나 악행보다 더 고상한 것, 더 중요한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아니면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201, 202쪽)
아침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밖에는 비가 그치고 태양이 떠올라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정원은 정말 아름다웠는데.
현실을 초월하는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작가는 이야기하지만,
결국 사람의 사랑이란 현실과 분리될 수 없고.
현실에 녹아든 사랑은 그 깊이를 더하거나 풍부해지기보다는,
증발해버리거나 빛이 바래기가 쉬우니.
대부분의 사랑은 이루어져도, 이루어지지 못해도 회한과 후회를 남긴다.
그럼에도 반짝반짝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니.
아침밥상에서 늙어가는 독신남들이 진지하게 마음 아픈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설정이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상상되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러시아 소설에서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울랄라~
안톤 체호프 단편선 <사랑에 관하여>,
안톤 체호프 지음, 안지영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