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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10. 2021

아내가 가출했다 8

현관, 엘리베이터. 지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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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현관문 안쪽까지 당도했다. 현관문 안쪽은 비교적 차분하고 아담한 크기였다. 감각적으로 그렇게 느낀 것은 그 안쪽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느 집과 비교한다면 외관상 다소 특이한 점이 있었달까. 회색빛 콘크리트가 벽에부터 바닥까지 넘치게 흘렀다. 다만 보이는 것은 콘크리트가 전부였다. 다른 어떤 가구도 물품도 그곳엔 전무했다.


  안쪽으로 진입하자 일반 가정집에서 떠올릴법한 그런 형식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현관이라지만 신발장도, 집의 내부라고 인식할 만한 물건조차 보이지 않았다. 거기는 느낌상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고 인식은 가능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벙커 같은 곳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바깥쪽에서 바라본 집의 구조와 안쪽의 모양이 지나치게 이질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나는 요새 안쪽을 침범하는 기분이 들었달까.


  나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될 것 같았다. 마침 회색 콘크리트 벽 오른 편에는 작은 카메라, 스위치, 지문인식기가 있었다. 보안상 아무나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어쩌면 연예인들은 모두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숙명일지도 모른다. 인기란 것은 그렇지 않은가.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살지만 지나친 사랑은 고려의 대상이 아닌 어떤 수동적이거나 상호보완적인 교환의 형태, 그런 거추장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어떤 형식적인 외관 말이다. 인기란 것은...


  벨을 꾹 눌렀다. 그리고 반응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간 고요한 침묵이 안쪽의 세계를 지배했다. 5초쯤 기다렸을까. 10초쯤 경과됐을까. 인류의 운명이 시작된 어느 최초의 기다림이 흐르고 흘러서 여기까지 오랫동안 당도한 느낌, 발효된 시간이 눈앞에서 나의 외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초록색 불빛이 반짝거렸다. 보안 시스템이 마침내 내 출입을 허락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카메라는 내 얼굴 부근을 스캔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스템은 나에게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핑크스가 던지는 수수께끼 같은 검증 절차 같은 것도 생략한 채, 안쪽에 머물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물론 그 세부 절차적인 것들은 내가 고민할 요소들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보안 담당자나 이곳의 주인이 맡아야 할 역할이 아닌가.


  초록색 불빛이 은은하게 퍼져 나오자 콘크리트 벽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처럼 숨을 쉬었다. 우지끈,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 같기도 성문을 지키려는 병사들이 한꺼번에 뒤로 후퇴하는 것 같은 소리이기도 했다. 소란스럽지만 시끄럽지는 않은 다소 기묘함이 뒤섞인 소리이기도 했다. 쓸데없이 콘크리트 벽은 두꺼웠다. 방음벽도 아닌 그 벽은 적어도 두께가 20센티미터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것이 스르르 바닥을 강하게 긁는 소음을 발산하며 스스로 열려 버린 것이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열려라 참깨처럼, 뜬금없이 개방돼버린 것이다.


  그것이 열림과 동시에 나는 다시 또 다른 세계의 안쪽으로 진입했다. 대문을 열고 작은 정원을 통과하고 다시 회색 콘크리트로 만든 현관 안쪽을 통과해서 계속 중첩된 뭔가를 뚫는 기분으로 안쪽에 들어선 것이다. 그 안쪽은 가로, 세로 1미터 정도 되는 비교적 비좁은 공간이었다. 바깥쪽과 물론 크게 다르게 생겨먹진 않았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구역만 나눠졌을 뿐, 다만 이상한 것은 사방이 막혀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천정 구석에는 네 개의 백열등이 비스듬하게 아래쪽으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은은하면서도 상식적인 그런 주광색 불빛이었다. 오른 편에는 숫자가 아닌 기호가 보였다. 이곳은 온통 암호 같은 체계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나는 아까부터 그 체계를 이해하려고 머리를 계속 쓰는 중이다. 그래서였을까. 들어서자마자 무력감과 피곤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기호로서 해석하라는 의도로 건축가는 이곳을 디자인했나 보다. 건축가에게 이 건물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평범한 외관과 기묘한 내부,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 다르게 뒤틀린 모양으로 호흡을 교환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이 건물은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으리라.


  기호는 총 다섯 가지 형태였다. 그 다섯 가지는 다섯 개의 사각형에 각각 새겨져 있었고 각각의 기호는 이렇게 생겼다. ‘새’, ‘공기방울’, ‘모래시계’, ‘열쇠’, ‘피라미드’였는데 나는 그 기호가 상징하는 게 무엇인지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사각형이 버튼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은 사각형 둘레를 중심으로 형광색 물질이 번들거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피라미드를 아니 버튼을 눌렀다. 그것이 눌러짐과 동시에 내가 서 있던 공간이 느리게 이동을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회색빛으로 둘러싸여 있어도 어떤 방향으로 이동하는지는 알 수 있다. 그 육중한 사각형은 아래쪽으로 계속 내려갔다. 아마도 5개 층 정도를 내려가지 않았을까. 한 층의 층고는 대게 2미터 내외다. 1초에 1미터 정도를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라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10초쯤 경과하면 지하 5층에 도착할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했다. 그러니 그런 예상은 역시 어김없이 빗나가고 만다. 10초가 아니라 5분, 아니 100분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바닥으로 내려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내려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바닥을 삽으로 떠내고 또 파고들었다. 누가 종로 한복판. 지하에 동굴이라도 팠단 말인가. 아니 천연 동굴을 남몰래 발견하고 그 위에 집이라도 세웠단 말인가.


  마침내 10초쯤 지났을 것이리라. 물론 5분일 수도 1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시간은 지나고 지나간 시간은 본래의 형체를 잃거나 세계의 온갖 물질들을 빼앗는다. 하지만 이 깊은 지하 속에서는 잃은 것을 되찾아올 것만 같았다. 어쩌면 가출해버린 아내를 되찾아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꿈같은 일은 지하 세계에 숨겨진 공장 같은 곳에서나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꿈을 꾸는 건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한다. 아내가 자신의 재산을 환수해갈지라도 내 것은 내가 온전히 지켜야 한다. 이런 상상 같은 것들, 마음대로 뻗어나가는 생각 따위 들도 지켜야 한다.


  지하 5층?에 당도하자 다시 육중한 벽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위쪽에서 참깨라고 외쳤으니 아래에서는 들깨라고 외치면 다시 닫히는 걸까. 어떤 원리로 열리고 닫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그렇게 기능된 것이다. 나 역시 의도된 대로 움직이면 된다. 잠시 주춤거리다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어디선가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살아있는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죽었다고도 볼 수 없는 이를테면 라디오 디제이의 낮은 주파수 같은 것이었다고 할까?


  “어서 오세요. 물건은 테이블 위에 올려두세요.”


  분명히 사람의 육성이었고 그리고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 뒤에 달려올 다른 형태의 목소리를 계속 기다려야 했다.


  -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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